“10개물체 0.02초만에 인식” 세계서 가장 눈치 빠른 로봇

  • 입력 2009년 4월 17일 02시 56분


유회준 교수가 초고속 인지칩이 달린 기판을 들고 있다. 사진 제공 KAIST
유회준 교수가 초고속 인지칩이 달린 기판을 들고 있다. 사진 제공 KAIST
초고속 인지칩을 내장한 로봇이 목표물을 찾아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 제공 KAIST
초고속 인지칩을 내장한 로봇이 목표물을 찾아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 제공 KAIST
유회준 교수 개발 ‘초고속 인지칩’ 세계가 주목

“세계에서 ‘눈치’가 가장 빠른 로봇입니다.”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유회준 교수가 연구실 한쪽에서 로봇 하나를 꺼내왔다. 키는 20cm쯤 될까. 세련된 외모도, 부품 수만 개가 복잡하게 얽힌 정교한 모습도 아니다. 얼굴 자리에는 눈, 코, 입 대신 카메라가 하나 달렸을 뿐이다. 그런데 이 자그마한 체구의 평범한 로봇이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국제고체회로학회는 ‘반도체올림픽’이라 불릴 정도로 반도체회로와 칩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 사람의 뇌 모방한 로봇 칩

“이 로봇이 눈치가 빠른 건 이 칩 때문입니다.”

유 교수는 손톱 크기 정도의 작은 칩을 들어 보였다. 가로, 세로 각각 7mm인 칩의 이름은 고성능 물체인식기. 이 칩을 로봇에 달면 최대 10개의 물체를 0.02초 만에 인식할 수 있다. 지금까지 물체를 인식하는 기능을 갖춘 칩은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보를 처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전력을 많이 소모했다. 물체의 특징을 일일이 인식한 뒤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베이스를 모조리 뒤져 물체의 특징과 맞아떨어지는 정보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간이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1초가 채 안 된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대신 의미를 부여한 물체만 집중 처리하기 때문이다. 뇌 연구에서 ‘시각집중’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유 교수팀은 이 개념을 칩에 적용했다. 칩에 시각집중기 역할을 하는 신경회로망을 넣은 것. 신경회로망이 찾는 대상을 실시간으로 골라내면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물체의 색깔과 윤곽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계산한다. 로봇은 이 결과에 따라 목표물을 찾아낸다. 기존 방법보다 물체 인식 속도는 최대 60배 빨라졌고, 사용하는 전력은 10분의 1로 줄었다.

유 교수는 “인간의 뇌가 사물의 특징을 추출하는 능력과 컴퓨터가 빨리 계산하는 능력을 합쳤다”며 “인간의 뇌를 닮은 칩을 만든 것은 세계 처음”이라고 밝혔다.

○ 스마트자동차부터 CCTV까지 활용 가능해

이 칩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자동차 룸미러나 앞 유리창에 이 칩을 달면 스마트자동차로 변신한다. 도로 표지판을 인식해 운전자에게 미리 정보를 알리거나, 차선을 변경할 때 앞차나 옆차의 위치를 알려준다. 유 교수는 “칩을 엔진과 핸들 조종부에 결합하면 운전자 없이도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연구팀은 자동차에 이 칩을 단 스마트자동차 모델을 제작하고 있다.

폐쇄회로(CC)TV에 칩을 달아 과학수사에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칩이 얼굴을 인식할 수 있어 범죄 용의자를 색출하거나 도난 차량을 찾는 데 유용하다. 연구팀의 고성능 물체인식기는 우수 연구로 선정돼 내년 1월 국제고체회로학회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대전=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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