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눈치’가 가장 빠른 로봇입니다.”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유회준 교수가 연구실 한쪽에서 로봇 하나를 꺼내왔다. 키는 20cm쯤 될까. 세련된 외모도, 부품 수만 개가 복잡하게 얽힌 정교한 모습도 아니다. 얼굴 자리에는 눈, 코, 입 대신 카메라가 하나 달렸을 뿐이다. 그런데 이 자그마한 체구의 평범한 로봇이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국제고체회로학회는 ‘반도체올림픽’이라 불릴 정도로 반도체회로와 칩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 사람의 뇌 모방한 로봇 칩
“이 로봇이 눈치가 빠른 건 이 칩 때문입니다.”
유 교수는 손톱 크기 정도의 작은 칩을 들어 보였다. 가로, 세로 각각 7mm인 칩의 이름은 고성능 물체인식기. 이 칩을 로봇에 달면 최대 10개의 물체를 0.02초 만에 인식할 수 있다. 지금까지 물체를 인식하는 기능을 갖춘 칩은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보를 처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전력을 많이 소모했다. 물체의 특징을 일일이 인식한 뒤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베이스를 모조리 뒤져 물체의 특징과 맞아떨어지는 정보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간이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1초가 채 안 된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대신 의미를 부여한 물체만 집중 처리하기 때문이다. 뇌 연구에서 ‘시각집중’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유 교수팀은 이 개념을 칩에 적용했다. 칩에 시각집중기 역할을 하는 신경회로망을 넣은 것. 신경회로망이 찾는 대상을 실시간으로 골라내면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물체의 색깔과 윤곽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계산한다. 로봇은 이 결과에 따라 목표물을 찾아낸다. 기존 방법보다 물체 인식 속도는 최대 60배 빨라졌고, 사용하는 전력은 10분의 1로 줄었다.
유 교수는 “인간의 뇌가 사물의 특징을 추출하는 능력과 컴퓨터가 빨리 계산하는 능력을 합쳤다”며 “인간의 뇌를 닮은 칩을 만든 것은 세계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칩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자동차 룸미러나 앞 유리창에 이 칩을 달면 스마트자동차로 변신한다. 도로 표지판을 인식해 운전자에게 미리 정보를 알리거나, 차선을 변경할 때 앞차나 옆차의 위치를 알려준다. 유 교수는 “칩을 엔진과 핸들 조종부에 결합하면 운전자 없이도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연구팀은 자동차에 이 칩을 단 스마트자동차 모델을 제작하고 있다.
폐쇄회로(CC)TV에 칩을 달아 과학수사에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칩이 얼굴을 인식할 수 있어 범죄 용의자를 색출하거나 도난 차량을 찾는 데 유용하다. 연구팀의 고성능 물체인식기는 우수 연구로 선정돼 내년 1월 국제고체회로학회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대전=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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