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25시]“주의 의무 다했나”… 오진과 과실 사이

  • 입력 2009년 4월 20일 02시 57분


병원 신세를 별로 져보지 않은 사람들은 의사가 어떤 병이든 고쳐줄 거라고 생각한다. 고장 난 자동차를 뚝딱 고쳐주는 수리공처럼. 그러나 사람의 몸은 자동차가 아니다. 증상은 같아도 원인이 다르기 십상이다.

그래서 진단은 어렵다. 의학은 확률게임이다. “확률이 70% 이상이면 계획대로 밀고 나간다”고 말하는 의사도 있다.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를 보면 진단이 거의 예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때문에 의사의 오진은 반드시 과실로 볼 수도 없다. ‘의사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주의의무를 실천했느냐 안 했느냐’가 의료과실이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이 된다.

같은 결과 다른 판결 두 사례

두 가지 사례가 있다. 둘 다 ‘오진’의 결과로 환자가 사망했지만 판결은 180도 다르다. 2004년 뇌수막염을 감기로 오진하는 바람에 아홉 살 난 남자 아이 A 군(경기 양주시)이 한 달 만에 사망했다. A 군은 열이 나고 머리와 배가 아프다고 호소해 동네 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목감기와 위장염이라며 약을 처방했다. 그러나 구토는 밤새 이어졌다. 그래도 의사는 처방을 바꾸지 않았다. 구토는 여전했다. 사흘째 되던 날 A 군은 3차 의료기관을 찾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자정이 넘자 호흡이 정지되고 결국 혼수상태에서 인공호흡으로 연명하다가 사망했다.

법원은 ‘의사가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유는 ‘뇌수막염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첫날에는 감기 처방을 했더라도 과실이 아니지만 증세가 나아지지 않으면 다른 병으로 의심하고 좀 더 자세히 진찰하거나 큰 병원으로 옮기도록 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B 씨(경남 함안군)는 2003년 담낭절제수술을 받은 직후 급성골수성백혈병이 발견돼 치료 도중 사망했다. 유족은 ‘백혈병 환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응급수술을 했고 결과적으로 백혈병 치료 기회를 놓치게 해 사망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됐다. 법원은 “보통의 의사로서 피하기 어려운 오진 범위에 속해 의료상 과오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의료진이 응급혈액검사, 생화학검사, 컴퓨터단층촬영(CT)을 동원해 진단한 결과 담낭염 합병증으로 패혈증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수술을 시행했고, 수술 후 백혈병이 발견됐다 해도 수술 전에 발견할 가능성은 낮았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면 과실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의료과실은 주로 인지 결함

어떤 의사라도 오진을 내리고 싶진 않을 것이다. 제롬 그루프먼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닥터스 싱킹(How Doctors Think)’이라는 저서에서 “대부분의 의료 과실은 기술적 사고가 아니라 의사의 인지(認知) 결함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물론 ‘오류 원인이 내 자신의 인지적 결함에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고민하는 의사는 흔치 않다. 그런 의사가 있다면 정말 ‘진짜 의사’라는 찬사를 받을 만하다. 그런 의사가 많다면 의료분쟁도 훨씬 줄어들 테고 말이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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