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은 허블우주망원경이 우주로 발사된 지 19년이 되는 해다. 허블망원경은 지금까지 44억 km를 움직이며 수많은 천체사진을 찍어 보냈다. 최근 들어 수명이 다하면서 ‘제2의 허블’이 2020년경 발사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세계 각국은 최근 허블망원경의 뒤를 이을 차세대 우주망원경 후예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한국 과학자들도 독자적인 우주망원경을 개발해 머지않아 선진국들과 함께 우주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작은 창문을 열 계획이다.》
○ ‘적외선’ 대세… 허셜, 가장 긴 파장 사용
우주는 지금도 계속 팽창하고 있다. 우주 생성 초기에 만들어진 별이나 은하들은 지구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천체일수록 파장이 긴 빛을 이용해야 관측이 가능하다. 가시광선 망원경보다 파장이 긴 적외선 망원경이 초기 우주의 모습을 관측하는 데 더 유리한 이유다. 허블우주망원경은 가시광선을 보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우주선진국들은 적외선 우주망원경 개발에 한발 앞서가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13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을 발사한다. JWST는 망원경의 눈 역할을 하는 반사경의 지름이 6.5m다. 허블보다 2.7배나 커 지구에서 130억 광년(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갈 수 있는 거리) 떨어진 우주까지 볼 수 있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만들고 있는 ‘스피카’와 유럽우주국(ESA)이 개발 중인 ‘허셜’ 역시 적외선 우주망원경이다. 이 가운데 허셜이 가장 긴 파장, JWST가 가장 짧은 파장의 적외선을 사용한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우주망원경 중 허셜이 가장 먼 곳에 있는 천체까지 관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2004년과 2006년 이미 ‘스피처’와 ‘아카리’라는 적외선 우주망원경을 쏘아 올렸다. 이들은 파장 2∼20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의 적외선을 이용해 다양한 천체를 관측하고 있다.
○ “허블이 나무를 본다면 미리스는 숲 보는데 적합”
한국도 최근 적외선 우주망원경 개발에 동참했다. 국내 과학자들은 우주선진국들이 선점한 영역을 벗어나 우주의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지난해부터 ‘미리스’라는 적외선 우주망원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리스는 스피처나 아카리보다 짧은 1∼2μm 파장의 적외선을 잡아낸다. 그보다 긴 파장의 빛을 잡아내는 스피처와 아카리가 보지 못하는 별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
미리스는 다른 적외선 우주망원경보다 시야가 넓다. 허블망원경과 비교해도 약 1만 배나 넓다. 길이 60cm, 렌즈 지름 8cm인 소형 망원경이라 초점거리가 짧기 때문이다. 이른바 광각 촬영이 가능해 한번에 많은 별을 관찰할 수 있다. 천문연구원 위성탑재체연구팀 박장현 박사는 “허블이 나무 한 그루를 자세히 보는 데 유리하다면 미리스는 숲을 관찰하는 데 적합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미리스는 2010년 말 과학기술위성 3호에 실려 발사될 예정이다.
스피처와 아카리는 현재 지구에서 약 600km 떨어진 우주 공간에서 작동하고 있다. 연세대 자외선우주망원경연구단이 만들고 있는 적외선 우주망원경 ‘아몬라’는 2012년경 이보다 훨씬 먼 150만 km 상공에 올라간다. 아몬라의 관찰 대상은 우주가 아닌 지구다. 지구에서 반사되는 적외선을 측정하는 것. 지구가 더워질수록 대기 중에는 수증기가 많아져 국지성 폭우와 태풍의 원인이 되는 구름이 잘 생긴다. 김석환 연세대 교수는 “지구에 도달한 햇빛이 구름에 반사돼 되돌아오는 양을 관찰하면 지구 온난화 정도를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적외선 외에 다른 빛을 보는 우주망원경을 개발하고 있는 한국 과학자도 있다. 이화여대 초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우주망원경연구단은 빅뱅 이후 우주에서 일어나는 가장 강력한 폭발로 불리는 감마선 폭발을 관측하기 위해 ‘유포’ 우주망원경을 개발하고 있다. 감마선 폭발은 2004년 발사된 미국의 스위프트 위성이 이미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폭발이 일어나 곳으로 망원경을 돌리는 데 70초나 걸려 감마선 폭발의 초기 모습을 담지 못했다.
유포에는 약 1mm 크기의 초미세거울 1만 개가 실린다. 거울의 각도를 1도 바꾸는 데 걸리는 시간은 2만분의 1초.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천체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 박일흥 연구단장은 “스위프트 위성이 고개를 돌려 본다고 치면 유포는 눈동자만 굴려 관측하는 것과 같다”며 “3년 뒤 NASA의 소형 위성에 실어 우주로 쏘아 세계 최초로 감마선 폭발 순간을 촬영하는 데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