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의 처지에서 보면 인간이 그 가운데를 잘라 길을 내는 행위는 면도칼로 맨살을 도려내는 짓보다 더 아픈 폭행이다.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와 국도가 스물여섯 개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란 일이 있다. 그래서 반달가슴곰이나 호랑이 같은 맹수류가 활동공간이 좁아져 사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휴전선 155마일에는 남북으로 네 겹의 철조망이 처져 토끼 한 마리도 못 다닌 지가 반세기를 훌쩍 넘었다. 일본인이 토막을 낸 종묘와 창경궁 사잇길도 면도칼로 도려낸 상처다. 북한산의 오소리들이 육교를 건너 종묘에 출현하는 것은 불가사의하다. 이 길도 하루속히 지하로 만들고 두 숲을 연결해야 한다.
무악재는 지금 서울을 서북쪽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관통로이지만 길을 넓히고 높이를 낮춰 서울의 우백호를 반 토막 내는 험한 꼴을 만들었다. ‘김신조 사건’ 직후에 군사작전도로로 급조돼 인왕산의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인왕산길도 이제는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됐다. 그때처럼 군사작전이 필요할 일도 없고, 사실상 차량 통행도 드물다. 청운아파트가 철거된 뒤 차량들이 드물게 다니는데 군인들은 눈만 오면 엄청난 염화칼슘을 뿌려댄다. 그 길 아래에 있는 아름다운 약수터가 모두 못 쓰게 됐다. 폐쇄를 하든지 아스팔트를 걷어내든지 그렇게라도 인왕산을 좀 더 건강하게 되살리는 생각을 해본다.
최근에는 강둑마다 자전거길 만들기가 유행이다. 그러나 옆으로 보행자통로가 필요하고 인라인 통로가 덧붙여져 점점 넓은 길이 된다. 자연에다 면도칼로 상처를 내는 행위이다. 강과 육지를 오가며 사는 양서류에게 이런 길은 지옥이거나 죽음이다. 포장 면적을 줄이고 길을 내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북한산에서 북악산을 지나 창경궁, 종묘, 세운상가, 남산, 용산, 그리고 한강까지 녹지로 연결한다는 것은 엄청난 생태계의 연장이다. 도심에서도 5대 궁과 작은 녹지를 이어 생태통로를 연장하는 작업이 우선 착수돼야 한다. 녹지 연결은 사람들이 손을 맞잡아 힘을 합칠 때 큰 힘을 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