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 왕국에선 영어 반, 한국말 반

  • 입력 2009년 6월 30일 02시 56분


한글화 작업 개발실 곳곳엔 김 이 박…
칠판엔 ‘주말 잘보냈어?’ 눈에 익은 글귀도

■ 2탄 출시 앞둔 美 블리자드社의 코리안파워

“게임을 만든 사람으로서, 한국 게이머들이 우리를 먹여 살린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 게이머들에게는 남다른 책임감이 생기곤 하죠. 그들이 보여준 열정이 제가 양질의 후속편을 만들게 된 원동력 중 하나였죠….”

스타크래프트의 아버지인 미국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최고경영자(CEO) 마이크 모하임 대표는 한국 얘기를 꺼낼 때마다 눈에 ‘하트’를 그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달 동아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도 그는 “한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시장”이라고 치켜세웠다.

23일(현지 시간) 기자가 방문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의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본사는 스타크래프트 2탄 공개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놀랍게도 그곳에선 만국 공통어인 영어만큼이나 자주 들리는 언어가 바로 한국어였다. ‘스타크래프트 왕국’ 안에서 ‘작은 한국’을 이루며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 스타크래프트 왕국의 ‘코리안 파워’

총 3개동 가운데 가장 왼편 건물. “한국에 최초로 공개한다”는 안내 직원의 말과 함께 개발실의 문이 열렸다. 이윽고 나타난 광경은 놀라웠다. 섹션으로 나뉜 작업실 앞에는 ‘김’, ‘이’, ‘박’ 등 낯익은 글자로 시작하는 개발자 이름이 두 집 건너 한 집꼴로 붙어 있다. 개발실에 놓인 칠판에는 ‘ㄱㄴㄷㄹ’, ‘주말 잘 보냈어’ 등의 글귀가 적혀 있다. 스타크래프트 2탄의 한글화 작업을 위해 한글을 배우는 직원들이 쓰는 칠판이다. 그 옆에는 여배우 송혜교의 사진 패널과 함께 태극기가 걸려 있다.

이 회사의 총 직원은 1200여 명. 본사 직원은 “우리는 국적을 따지지 않기에 한국인이 몇 명인지 답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많다”고 대답했다. 분명한 것은 한국인들이 게임 개발의 핵심 부문에 대거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2탄에서 ‘밸런스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데이비드 김 씨(27)가 대표적. 그는 저그, 테란, 프로토스 등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세 종족의 강점과 약점을 연구해 어느 한 종족이 우월하지 않게 균형을 유지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한국의 가위바위보 게임처럼 세 종족 가운데 누구도 절대 우위에 있지 않게 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고교 졸업 후 캐나다로 건너가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김 씨는 2년 전 스타크래프트 2탄 개발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김 씨는 “블리자드에선 수직적 조직문화가 아니라 직급에 상관없이 능력 위주로 업무가 진행된다”며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것보다 일 잘하는 한국인으로 기억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그냥 ‘한국인’보다 일 잘하는 직원이 되고 싶어…”

6년째 3D 그래픽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제이미 장 씨도 블리자드 내 대표적인 ‘코리안 파워’다. 그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소품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고 있다. 그는 “모하임 회장이 2007년 스타크래프트 2탄 개발 발표를 서울에서 최초로 했고 사내 TV와 모니터가 죄다 한국 제품일 정도로 블리자드 내에서 한국의 인지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사내의 관심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라는 것.

마지막으로 안내 받은 곳은 3주 전 생긴 블리자드 도서관. 게임 관련 책들과 각종 게임 소프트웨어가 즐비한 이곳의 사서도 한국인인 스티브 박 씨였다.

어바인=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쉿! 쉿! 블라인드 친 작업실은 보안 또 보안…▼

“아니, 이런 데서 어떻게 일해요?”

23일 오후 3시(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 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내 스타크래프트 개발실. 밖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지만 곧 공개될 스타크래프트 2탄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작업실은 횃불 없이 볼 수 없는 ‘동굴’과 같았다. “어두워야 일이 잘된다”며 개발팀 직원들은 대낮에도 블라인드를 친 채 촛불을 켜놓았다.

음침한, 한편으로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낯설었다. 11년 만의 후속작 공개를 앞둔 터라 외부 방문자 출입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개발실 내부 사진 촬영은 물론이고 화장실 가는 것도 안내자의 허락을 맡아야 했다. 보안 유지를 위해 “쉿!” 또 “쉿!”이었다. 공개시기에 대해서도 마이크 모하임 대표의 대답은 언제나 그랬듯 “곧(Soon)”이 전부였다.

그러나 개발실 내부의 비상한 분위기와 달리 외부 풍경은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반바지, 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난 더스틴 브라우더 수석 게임디자이너는 기자에게 “후속작은 카드 게임이나 닌텐도DS 게임 등 단순한 게임들에 영향을 받아 만들었다”고 말했다. 크리스 시거티 수석 게임프로듀서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게 최대한 쉽게, 그러나 아무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는 것이 게임 개발 내내 우리가 고수해 온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쇼케이스 장에서는 본사 개발자들끼리 ‘한판’ 붙었다. 밸런스 매니저인 한국인 데이비드 김 씨와 미국인 매니저 맥 쿠퍼 씨의 대결. 두 사람이 대결을 벌이는 동안 전작(스타크래프트 1탄)에 비해 화려해진 3D그래픽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눈이 아플 정도로 현란한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거슬린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어바인=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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