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에 모든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고등과학원에서 만난 영국 맨체스터대 물리천문학과 코스탸 노보셀로프 교수(35·사진)는 ‘꿈의 나노 물질’로 불리는 그래핀을 발견한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운을 뗐다.
그래핀은 탄소원자들이 벌집 모양으로 연결된 얇은 막 구조다. 두께는 0.35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로 매우 얇지만 전기전도성이 뛰어나고 잘 휘어진다. 그래핀을 여러 층 쌓으면 흑연 연필심이, 김밥처럼 돌돌 말면 탄소나노튜브가 된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2004년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세계 최초로 그래핀을 제조하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과학계에서 스타가 됐다. 그래핀의 물리적 성질을 밝힌 2005년 ‘네이처’ 논문은 불과 3년 만에 888회나 다른 학자들의 논문에 인용됐다.
“연구 시간의 10%는 엉뚱하고 기발한 실험을 하는 데 쓰는 게 실험실 관례였죠. 개구리를 공중부양 시키기도 하고 게코도마뱀 발바닥을 흉내 낸 테이프도 만들었어요. 금요일 저녁마다 동료들과 재밌는 실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핀을 발견한 것도 금요일 밤 실험에서였다. 재미삼아 세상에서 가장 얇은 막 만들기에 도전하던 노보셀로프 교수는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는 간단한 방법으로 그래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믿지 못할 정도로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우연히 얻은 결과를 진지한 연구로 발전시키기까지 어려움도 있었다. 그는 “그래핀은 유기화학, 양자역학 등 여러 분야가 융합된 연구”라며 “새로운 분야라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뒤져야 했다”고 말했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그래핀의 산업적 활용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기존 실리콘 반도체를 대신하거나 휴대전화, 태양전지 등에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는 “그래핀 응용 연구에서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며 한국의 연구 수준을 극찬했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요즘엔 차세대 트랜지스터로 활용할 수 있는 그래핀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스위스 박물관을 방문해 연필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면서 그래핀의 역사를 다룬 대중서를 집필할 계획도 밝혔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