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버스 유리창에 낙서하는 재미는 머지않아 사라질지 모른다. 김이 서리지 않는 유리창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미세한 열이 나는 투명 탄소나노튜브는 차창에 김이 서리는 것을 막아준다. 또 암에 걸린 환자는 매일 아침 약물전달 로봇이 가득 담긴 캡슐을 먹는다. 무더운 여름을 겨냥해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양복도 등장한다. 나노기술을 연구하는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의 과학자들이 예상하는 10년 뒤의 모습이다.
정보기술(IT)의 획기적인 변화도 예상된다. 최신 컴퓨터에 설치되는 320GB(기가바이트) 하드디스크 10개가 손톱만 한 플래시 메모리에 쏙 들어간다. 사업단의 정준호 책임연구원(기계연)은 “마치 도장을 찍듯 수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크기의 회로를 반도체 기판에 찍는 수 새로운 제조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며 “2, 3년 안에 500원짜리 동전만 한 1000GB급 하드디스크가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의 이조원 단장은 “앞으로 5∼10년 만에 나노 기술은 ‘극소’ ‘초고속’ ‘대용량’ ‘친환경’을 키워드로 우리 일상을 바꾸는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장 큰 혁명은 의학에서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단의 최중범 교수(충북대)는 “박테리아와 몸집이 비슷한 나노로봇이 인공 뇌를 장착하고 몸속을 구석구석 누비며 치료하는 시대가 온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지난해 Tb(테라비트·1Tb는 1조 비트)급 단(單)전자 핵심논리소자회로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단전자소자는 1개의 전자만으로 제어되는 신개념 소자로 전기 소모와 열을 수십 분의 1 수준으로 줄인다. 최 교수는 “단전자소자는 뇌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와 매우 유사한 기능과 구조를 갖는다”며 “2020년 이후 수십억 개의 단전자소자로 구성된 인공두뇌를 가진 나노로봇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상 제품도 ‘친환경’ 방식으로 모두 리모델링된다.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단의 김성진 이화여대 교수는 2002년 냉매 없는 에어컨에 사용되는 ‘나노열전(熱電)소재’를 개발했다. 이 소재에 전기를 흘리면 소재 바깥에 온도차가 생긴다. 김 교수는 “나노열전소재로 냉장고와 에어컨을 만들면 오존층을 파괴하는 냉매가 필요 없어지고 남는 열로 전기를 다시 생산할 수 있다”며 “탄소배출량과 오염물질을 줄이는 등 환경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교육과학기술부 박항식 기초연구정책관은 “나노기술을 포함해 바이오, 융합 연구에서 한국이 괄목할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은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 덕분”이라며 “10년 뒤 한국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꿀 핵심기술들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 sypy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