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조루치료제, 한국 임상실험은 어떻게?

  • 입력 2009년 8월 2일 20시 14분


2006년 서울 아산병원에 70여명의 남자환자들이 임상실험에 참가하겠다고 찾아왔다. 여자친구로부터 뚜렷한 이유 없이 결별통보를 받은 뒤 '내가 너무 못해서'라며 자책하는 20대 청년, 부인이 가자고 설득해 끌려온 30대 남성, 한약재 스프레이를 뿌렸다가 온 몸에 한약재 냄새가 배는 바람에 다음날 "과장님, 요즘 한약 드시나봐요"라는 말을 듣고 겸연쩍어하던 40대 가장 등 연령대는 20~50대까지 다양했다. 이들이 참여하려한 실험은 바로 '먹는 조루치료제'의 마지막 3상 임상실험이었다.

●조루,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다

병원 측도 놀랐다. 임상실험에 환자들이 이토록 적극적이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2001년경 이 병원에서 진행했던 발기부전제 임상실험에도 고작 20명이 참가했을 뿐이었다. 다국적 제약회사 얀센 측은 한국 내 지원자가 너무 많자 부랴부랴 할당량을 늘리기까지 했다.

국내 12개 병원에서 나눠서 진행된 임상실험에는 남성 조루환자 약 450명과 이들의 파트너까지 총 900여명이 참가했다. 실험방식은 간단했다. 각 커플들에게 한 달 동안 먹을 30정의 프릴리지와 시간을 잴 수 있는 스톱워치를 줬다. 성관계 30분 전 약 한 알을 먹은 뒤 남자 참여자가 사정하는 순간 스톱워치를 누르는 '민망한 실험'이었다. 참가자들은 4주에 한 번씩 병원에 찾아가 언제 약을 복용했는지, 사정까지 걸리는 시간은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 기입한 기록지를 제출했다. 실험은 1년 동안 계속됐다.

관건은 여성 파트너(배우자)가 의료인들에게 솔직하게 보고할 수 있느냐 여부였다. 여성이 공개적으로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꺼려하는 한국문화 때문에 부부간 성관계 만족도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진들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당시 임상실험 기록지를 받고 참가자들과 직접 상담했던 간호사 류승현(가명)씨는 "성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그토록 큰지 몰랐다"며 "차라리 실험에 참가하겠다고 온 부부와 커플들은 고쳐보겠다고 온 사람들이지만, 보수적인 중년 남자들 중에는 배우자의 불만에 관심조차 없는 경우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실험 참여자들 만족도는 높은 편

조루는 발기부전과는 달리 전 연령대에서 고르게 30%가량의 유병률을 보인다. 젊을 때는 문제없다가 40대 이상부터 급격히 늘어나는 발기부전과는 달리 19세 이상 성인남자 3명 중 1명꼴로 조루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지난해 대한남성과학회가 국내 성인남성 20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7.5%의 남성이 스스로를 조루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조루환자 중 대다수가 "업무 등 다른 사회생활에서도 위축감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그만큼 치료제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기존의 조루치료법은 대부분 말초신경을 무디게 하는 방법에 초점을 뒀다. 스프레이, 젤, 음경배부신경차단술이 바로 그 예다. 아르헨티나·멕시코 등 남미와 한국은 말초신경을 좀 더 중요시해 말초신경을 죽이는 수술이 유행한 반면, 서구 국가들은 중추신경 내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더 주목했다.

사정은 체내 세로토닌 분비가 차단될 때 이뤄진다. 조루환자들의 경우 흥분한 뒤 세로토닌이 단시간내 빨리 차단되는 것이 문제였던 것. 먹는 조루치료제는 이 점에 착안해 세로토닌이 체내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한국얀센 측은 한국을 포함해 143개국에서 조루환자 6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시험에서 사정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복용 전 평균 0.9분에서 복용 후 3.5분으로 3.8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당시 임상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었다. 참여자들이 약을 복용하기 전 사정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분 내외. 약을 복용한 뒤 2~4배 정도 시간이 연장됐다고 보고한 사람들이 많았다. 15분 이상 효과를 본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일부 실험자 중에서는 오히려 "1시간 이상 사정을 못해 배우자와 본인 모두 고통스러웠다"고 보고한 사람도 있었다.

약에 대한 만족도는 사람마다 달랐지만 실험 참가자들이 가장 흡족스러워했던 것은 '시간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대다수의 임상실험 참가자들은 "배우자가 진짜로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그동안 말 꺼내기조차 어려웠는데 실험에 장기간 참여하면서 사이가 좋아졌다" "대화를 나누면서 갈등이 많이 풀어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심지어 지방에서 서울까지 실험을 위해 올라왔던 40대 중년부부는 의료진을 '생명의 은인'이라고 부르며 실험이 끝난 지금도 명절마다 지역토산품을 병원에 보내주고 있다.

●'안전성 부족' 이유로 미국은 승인거부

과연 '다폭세틴'은 조루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얀센의 '프릴리지'는 현재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 스페인, 독일 등 유럽 7개국에서 시판되고 있다. 시판된지 1~3개월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판매량이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지만, 스웨덴 핀란드보다 스페인과 독일에서의 판매량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05년 먹는 조루치료제의 안전성을 문제 삼아 승인을 거부했다. 유럽 국가 중 영국도 아직 승인하지 않은 상태다. 한국얀센측은 "전 세계 임상실험자들 중 5%만 두통, 메스꺼움을 경험했고, 0.25%만 실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국내 임상실험에서는 프릴리지 30mg을 복용한 경우, 약 10%가 두통과 메스꺼움을 경험했고, 이 보다 농도가 더 쎈 60mg을 복용한 뒤 부작용을 경험한 사람이 20%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가별 인종별 데이터는 공개되지 않아 제약사가 밝힌 장밋빛 임상결과만 믿기는 어려운 상태다.

임상결과와 실제결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5년 전 '임상결과가 좋다'는 소문과 함께 기대를 불러 일으켰던 발기부전제 '유프리마' 역시 구역질 등 부작용만 많고, 효과는 거의 없어 시장에서 퇴출된 상태다. 프릴리지의 임상실험을 진행한 서울아산병원 안태영 비뇨기과 교수는 "9월말 시판된 뒤 환자들이 실제 복용했을 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며 "임상결과만 있을 뿐 추가적인 연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들이 지나치게 기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지현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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