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공학자 키운건 ‘머리’보다 ‘가슴’

  • 입력 2009년 8월 3일 02시 55분


■ 서울대 오헌석 교수팀 국내 대표 공학자 101명 분석

‘이성보다 끈기-열정’ 감성요소 더 크게 작용
자연과학자들에 비해 명문대 출신비율 낮아

《2004년 공학한림원이 수여하는 ‘젊은 공학인상’을 수상한 권오경 한양대 제2공과대학장(55)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에서 큰돈을 주고 산 흑백 TV를 직접 다 분해했다가 고장을 냈다. 그는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해서 TV가 나오는 건지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 같은 호기심과 실험이 그를 아날로그반도체 산업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만들었다.》

서울대 한국인적자원연구센터 오헌석 교수(교육학) 연구팀은 ‘한국의 대표 공학자’ 101명 중 29명을 인터뷰해 이들의 성장과정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한국공학상 등 주요 상을 수상했거나 ‘마퀴스 후즈 후’ 같은 인명사전에 등재된 공학자 등 101명을 ‘한국의 대표 공학자’로 선정했다. 2일 연구팀에 따르면 공학자들은 △어린시절의 호기심으로 만화영화나 과학자 위인전을 통해 과학기술과의 ‘로맨스’가 시작되고 △자신의 연구에 ‘중독’됐으며 △기존 연구와 연구비 등 기득권을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특성이 발견됐다.

○ 어린시절 호기심이 ‘연구 중독’으로

서울대 박병국 교수(전기공학)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배운 증기기관을 직접 만들고 싶어 했다. 산업혁명을 일으킨 주요한 원인이 증기기관에 있었기에 직접 만들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던 것.

대표공학자들은 어린시절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이들의 호기심은 끊임없는 조작과 실험으로 이어졌다. 올해 1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재단이 선정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한 건국대 원종필 교수(지역건설환경공학)는 미국 유학시절 별명이 ‘노숙자’였다. 공부에 파묻혀 지내느라 노숙자처럼 수염도 안 깎고 늘 행색이 초라했기 때문. “죽기 살기로 2년을 공부하고 나서 논문을 끝낸 후 뒤풀이 자리에서 아는 형과 맥주를 한잔 하니 ‘어, 너도 술 마실 줄 아냐’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죠.”

연구팀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바라던 결과가 나올 때 생기는 쾌감 때문에 공학자들은 휴일도 없이 연구에 매달린다”고 설명했다.

○ 기득권을 버리고 새로운 도전

송정희 서울시 정보화기획단장은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삼성종합기술원 선임연구원,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부장 등을 거치면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정보통신부 IT정책자문관으로 옮긴 뒤 2006년 11월 지금의 자리로 이동했다. 국내 대표 기업 중 하나인 삼성전자의 전략기획실에서 일하며 얻은 명성을 버리고 정부기관으로 옮기는 새로운 도전을 한 것. 그는 “삼성을 벗어나 정통부와 서울시에서 일하면서 공학의 힘을 다시금 실감했다”며 “서울시를 전자정부로 만들어 행정 서비스를 더욱 균질적으로 제공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연구자 중 논문 피인용 횟수가 가장 높은 학자인 서울대 현택환 교수(화학생물공학)는 5년 주기로 연구의 큰 흐름을 바꿔왔다. 이미 나노입자 기술의 권위자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던 현 교수는 의료분야로 관심을 돌려 2008년 암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새로운 나노캡슐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 공학자는 재능보다 노력이 더 중요

2007년 3월 ‘이달의 엔지니어상’을 수상한 강종구 ㈜유니테스트 수석연구원의 최종 학력은 ‘대졸’이다. 미국 박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공학 분야 전문가치고는 ‘가방끈’이 짧은 셈이다. 하지만 연구 성과가 꼭 학력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D램 메모리 검사 장비를 개발해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를 주도하는 등 이 분야 권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연구팀이 공학 분야 수상자 101명의 출신 대학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 43명(43%), 한양대 10명(10%), 연세대 5명(5%), 인하대 5명(5%), 고려대 4명(4%), KAIST 4명(4%), 동아대 부산대 영남대 중앙대가 각 2명(8%), 이화여대 성신여대 아주대 원광대 등 14개 대학이 각 1명씩이었다. 전국 4년제 대학 200개 중 24개 대학이 공학 분야 수상자를 배출한 것. 수상자 중에는 고졸 출신도 2명이었다.

같은 연구팀이 2007년 자연과학 및 생명과학 분야 수상 과학자 76명의 출신 대학을 분석한 결과 수상자를 배출한 대학은 전국 4년제 대학 200개 중 11개였다. 공학 분야에 비해 수상자 배출 대학이 편중됐고, 서울대 등 특정 대학의 쏠림 현상도 심했다. 연구팀은 공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재능보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오헌석 교수는 “뛰어난 공학자가 되기까지는 지능 등 이성적인 요소보다는 집중 끈기 열정 등 감성적인 요소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 학장을 지낸 김도연 울산대 총장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줄이려면 청소년과 여학생들이 공학에 관심을 갖도록 어릴 때부터 관심을 쏟아야 한다”며 “공학 분야에 대한 연구 지원을 대폭 늘려야 국가 연구력도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표] 공학자 인적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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