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게임 개발회사 컴투스의 임준석 개발부 팀장은 두 달 전 깜짝 놀랄 일을 경험했다. 최근 내놓은 롤플레잉게임(RPG) ‘이노티아 연대기 2’의 비공개테스트(CBT) 지원자 모집에 1000명 가까운 사람이 몰렸기 때문이다. 비공개테스트는 게임 정식 발매 전에 오류를 발견하거나 사용자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하는 작업으로, 온라인게임에서는 정식 절차로 굳어질 정도로 보편화됐다. 그러나 모바일게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 게임은 2년 전 공개된 1탄에 이은 후속작이지만 비공개테스트 같은 ‘식전 행사’를 가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개발 기간만 꼬박 2년 걸렸고, 개발비용도 1998년 회사 설립 이래 가장 많은 15억 원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가수 박지윤, 메이비 등과 함께 OST 음반까지 만들 정도로 정성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2000억 원을 향해 달리고 있는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을 놓고 관련 업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더는 야구 게임, 고스톱, 혹은 뽁뽁이 터뜨리기 같은 단순한 ‘킬링 타임’용 게임에 머물지 않고 덩치가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시나리오 작가가 쓴 RPG부터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하는 시뮬레이션 게임 등 ‘대작’ 게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 온라인게임에 도전하는 모바일게임
대작 게임 개발을 위해 업체들은 조직부터 거대하게 만들었다. 최근까지는 모바일게임 한 편 제작에 기획, 프로그래머, 그래픽 디자이너 등 3명이면 충분했다. 기간 역시 3∼6개월 정도면 ‘뚝딱’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이노티아 연대기 2에 투입된 개발 인원은 9명이다. 기본 골격은 똑같지만 그래픽 파트에 캐릭터 담당, 휴대전화 사용자환경(UI) 담당 등으로 작업이 세분되어서다. 이 때문에 인력도 확충했다. 2007년 155명이었던 컴투스 임직원은 현재 240여 명으로 90명 가까이 늘었다. 기획 파트도 시나리오 구성, 휴대전화 시스템 등으로 전문화됐다. 임 팀장은 “과거에 비해 스케일이 커져서 내부 인력만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모든 작업을 통제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다음 3탄 때는 전문 시나리오 작가를 외부에서 영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로 생겨난 대작 게임은 방대한 시나리오와 뛰어난 그래픽이 특징이다. 모바일게임 업체 게임빌이 최근 내놓은 축구게임 ‘위너스사커’는 3차원 그래픽으로 제작돼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포터블(PSP) 등 휴대용 게임기 못지않은 현장감을 나타냈다는 평을 받았다. 또 이달 말 공개되는 RPG ‘제노니아 2’는 시나리오 분량만 A4용지 400장에 달한다.
또 단편 게임이 아닌 시리즈 게임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넥슨모바일이 최근 내놓은 ‘역전재판 2’는 캠콤사의 게임을 한글화해 내놓은 것으로 게임 구성은 총 3개의 에피소드로 각각 나뉘어 있다. 편당 용량은 5MB.
○ 용량 커진 휴대전화가 모바일게임 고급화 견인
모바일게임의 대형화는 휴대전화 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내에 모바일게임이 등장한 것은 10년 전인 1990년대 말. 흑백 화면 속에서 구현된 초기 모바일게임은 용량도 128KB 정도로 작았을뿐더러 그래픽도 조악했다. 당시 휴대전화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이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용량 휴대전화가 등장하며 모바일게임도 용량 제한에서 해방됐다. 게임빌의 ‘제노니아 2’ 개발을 총괄한 정용희 실장은 “개발 초기부터 해외 스마트폰에 맞게 고사양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해외용으로 제작할 경우 ‘앱스토어’를 통해 해외에 진출할 가능성도 크다.
또 기존 타이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퍼즐, 보드게임 등 비슷한 장르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으로도 해석된다. 특히 닌텐도DS, PSP 등 휴대용 게임기를 이용해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자 휴대용 게임기가 모바일게임의 대체재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한 모바일게임 회사 관계자는 “그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은 게임 개발사, 과다한 게임 공급, 이로 인한 개발사 간 치열한 경쟁 같은 문제점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라며 “이로 인해 ‘웰 메이드’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모바일게임 업계 내부에서 일어났다”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