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문인혁 씨(42).
그는 2년 전만 해도 ‘국가대표’였다. 2007년 일본 시즈오카에서 열린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영어권 선수들의 텃밭인 영문 워드프로세서 종목에서였다. 그 덕에 대통령 훈장까지 받았다.
17일 만난 문 씨는 운동복 차림이었다. “정장을 입어본 건 면접 때뿐”이라고 했다. 스무 장 넘게 이력서를 냈지만 그는 2년째 무직이다.
“면접 보러 가면 ‘경력이 이렇게 좋은데 왜 취업을 못했냐’면서 ‘연락을 주겠다’고 하는데, 연락이 온 적은 없어요.”
그는 아침마다 수영장에 간다. 목이 움직이지 않아 자유형은 못하고 배영만 한다. 척추가 굽어 움직임이 둔해지는 강직성 척추염이 그가 가진 장애다. 운동 외엔 치료법이 없고 약으로 고통을 줄이는 정도다.
문 씨는 목이 좀 꾸부정할 뿐 컴퓨터로 업무를 보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지난해 전국 기능경기대회에 나가 컴퓨터 수리 부문 동메달까지 추가했지만 ‘기다리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의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 30만 원. 매달 드는 약값 90만 원은 기초생활수급자라 면제다. 취업을 하면 수급자의 혜택이 없어지기 때문에 어떻게든 월수입이 120만 원 이상인 직장을 구해야 한다.
2007년 장애인올림픽 전기전자 종목 동메달리스트인 천호용 씨(40). 그는 올림픽 메달도 모자라 전자 산업기사와 정보분석사 등 10개의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자격증은 무용지물이었다.
“기업들이 장애인이라고 하면 어떤 자격증을 땄냐고 묻는 게 아니라 몸 상태부터 봐요. 업무도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최저임금을 줄 수 있는 단순 검사직으로 몰고갑니다.”
천 씨는 7전8기 끝에 최근 대구의 한 전자업체에 입사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올림픽 출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출근한다. 그는 “허리디스크로 오래 서있는 게 힘든 정도인 저도 이런데, 저보다 몸이 안 좋고 경력이 없는 장애인들은 취업할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한국은 4년마다 열리는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에서 2007년까지 4회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금의환향한 선수들이 기량을 펼칠 일터는 턱없이 부족하다. 장애인 고용률도 의무 고용률인 2%에 미치지 못하는 1.72%(2008년 기준)에 불과하다.
서울산업대 금속공예과 오원택 교수는 “국제대회에서 입상한 선수들은 전문직종에서 일반인 못지않은 기술을 갖고 있지만 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다”며 “이는 한 사람의 희망을 꺾을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배’들의 암울한 전례에도 많은 장애인은 기능대회를 통해 ‘취업 스펙’을 쌓으려 한다.
지체장애 2급인 배진용 씨(23)는 지난해 서울 장애인기능대회 전자 설계(PCB) 부문에서 우승한 뒤 지난주 전남 목포에서 열린 전국 기능대회에 참가했다. 한국 폴리텍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일산 장애인직업훈련센터에서 1년 반 과정을 수료했지만 취업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 씨는 이번 목포 대회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내년 대회에서 우승한 뒤 2011년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에 출전하는 게 목표다. 그는 “올림픽에서 우승을 해도 취업이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장애인이) 전문성을 키웠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대구=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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