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스요크셔의 작은 마을 세틀 인근에 있는 고지대 ‘말럼’. 이곳에서 차를 타고 40분을 더 달리면 해발 377m로 영국에서 가장 높은 호수 ‘말럼 탄’이 나온다. 18일 오전 11시 호수 북쪽의 ‘말럼 탄 야외연구센터’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영국 왕립지리학협회 요크셔지부가 마련한 ‘말럼 탄 생태탐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먹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날씨에도 참가자 16명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반짝거렸다.
○ 눈으로 확인하는 말럼 탄의 비밀
“이곳은 물이 잘 투과되는 석회암 지역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호수가 생겼을까요?”
에이드리언 피클 소장을 따라 20분쯤 산길을 오르자 눈앞이 탁 트이며 호수가 펼쳐졌다. 피클 소장의 질문에 참가자들은 ‘지하에 물이 새지 않는 지층이 있을 것이다’ ‘호수 바닥은 석회암이 아닐 것이다’ 등 저마다 답을 내놓았다. 실제로 호수 주변 지역은 대부분 석회암이다. 말럼 탄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석회암 벽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방목하는 양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박아놓은 것이다. 그런데 호수 맨 밑바닥, 눈에 보이지 않는 깊숙한 곳은 4억 년 전 형성된 점판암으로 이뤄졌다. 이 점판암이 호수에서 물이 새나가지 않도록 막고 있는 셈이다.
참가자들이 호수 옆 늪지대에 난 길을 따라 서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물가에 늘어선 버드나무숲이 눈에 들어왔다. 10여 m 떨어진 지점에는 땅딸막한 물이끼가 무성했다. 피클 소장은 “불과 몇 발짝을 사이에 두고 식물 종류가 다른 이유는 토양의 산성도(pH)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석회암이 땅 위로 솟아 있는 버드나무숲 주변은 pH가 8로 약염기를, 초원지대와 이어진 물이끼 주변은 pH가 4로 산성을 띤다. 영국에 사는 물이끼 32종 중 절반인 16종이 이 지역에서 자란다. 영국의 환경단체인 내셔널트러스트는 염기성 습지와 산성 습지가 한데 뒤섞인 말럼 탄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참가자들은 3시간 동안 탐사를 이어갔다.
○ 8개 지부에서 한 해에 65개 프로그램 진행
영국 왕립지리학협회의 지부가 주최하는 과학문화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에게 과학의 즐거움을 선물하는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요크셔를 비롯해 체셔, 남웨일스 등 8개 지부가 작년 한 해 동안 진행한 과학문화 프로그램은 65개. 협회 전체 프로그램의 절반이다.
요크셔 지부의 뉴캐슬 인근 ‘하드리아누스 성벽 탐사’는 말럼 탄 탐사와 함께 올해 인기 프로그램이다. 남웨일스 지부의 ‘세번 강 절벽 탐사’도 반응이 좋다. 지리학이 현장 연구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고려해 지역의 특성을 살린 점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요크셔 지부 샘 왓슨 위원장은 “영국에는 런던 같은 대도시 이외에도 요크, 에든버러, 카디프 등 과학과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지방 도시가 많다”면서 “주민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 흥미를 갖고 학자들의 관심도 높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고 말했다.
국내에도 지역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과학문화의 저변을 넓히는 활동이 있다. 여성 과학도들이 중심이 돼 결성한 극단 ‘사이꾼’의 ‘찾아가는 과학연극’이 대표적이다. 요즘 공연하고 있는 ‘방구리 여사의 별난 과학수업’은 한국판 퀴리 부인인 방구리 여사가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딴 손자 안수탄에게 다채로운 과학 실험을 보여주며 일어나는 내용을 담았다. 유머가 넘치는 이야기 전개에 산과 염기, 힘과 운동 등 초등학교 수준의 과학 지식이 잘 녹아 있다.
사이꾼은 상대적으로 문화적 혜택이 적은 지역을 찾아가 공연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올해만 해도 대전, 충북 청주 등 충청권과 가평, 평택 등 경기도에서 과학연극을 펼쳤다. 사이꾼 임주희 대표는 “소외된 지역의 관객에게 과학으로 감동을 선물하고 싶어서 먼 지방을 찾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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