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이용한 치료법 어떤증세 효과있나 거머리, 버거병-관절염에 효과 구더기, 괴사조직 뜯어내 새 살 돋게 “적절한 기생충 투여, 면역에 도움”
한동하 대한생물요법학회 회장이 궤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상처 부위에 의료용 거머리를 놓고 있다. 이때 거머리는 한 시간 정도 피를 빠는데 감염 우려 때문에 한 번만 쓰고 폐기한다. 한동하 한의원 제공
영화 ‘사랑과 영혼’ ‘지 아이 제인’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배우 데미 무어가 지난해 인기토크쇼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해 “내 젊음의 비결은 바로 거머리”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피곤할 때나 긴장을 풀 때, 몸에 기름을 바른 뒤 거머리를 올려놓는 것이 비결이라는 것. 그는 “거머리가 나쁜 피를 빨아먹고, 내 몸에 있는 독소를 빼주는 역할(디톡스 세러피·detox therapy)을 한다”며 “혈액검사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거머리-구더기의 ‘귀환’
전문가들은 데미 무어의 설명에 대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라고 말한다. 거머리가 죽은 피를 빨아내 해독작용을 한다는 것은 중세시대에 유행하던 잘못된 오해다. 그러나 거머리의 침샘에서 분비되는 성분들이 혈액순환을 돕고, 염증을 가라앉히며 미세혈관을 재생하는 효과는 있다.
대표적인 물질이 바로 ‘히루딘’이라는 생리활성 물질이다. 국내에서도 히루딘 성분을 이용한 연구결과가 활발하다. 한동하 대한생물요법학회 회장이 2005∼2008년 의료기관에서 버거병으로 진단받은 남성 환자 64명을 대상으로 거머리치료를 시행해 분석한 결과 “52명(81%)에게서 완치에 가까운 치료효과가 나타났다”고 3일 밝혔다. 버거병은 동맥이나 정맥에 염증이 생겨 혈관이 막히고 손가락이나 발가락부터 썩는 병으로 절단 이외에는 뾰족한 치료법이 없는 난치질환이다.
거머리는 국내에서는 버거병 이외에도 관절염, 통풍과 혈관염, 당뇨로 인한 족부장애에도 폭넓게 쓰이고 있다. 2004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은 거머리를 의료용 기구로 공식 승인했다. 서양에서는 환자가 몸을 잘 움직이지 않아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욕창에 많이 쓴다.
구더기는 영국과 뉴질랜드에서 특히 각광받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정형외과 의사인 존 처치가 당뇨병성 족부궤양 치료에 구더기가 효과가 있다고 발표하면서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 최근 요크대 연구팀은 영국의학저널을 통해 “족부궤양이 있는 환자 270명을 대상으로 1년간 실험한 결과 일반적인 하이드로겔 상처치료 연구와 구더기의 치료효과 간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연구진은 “죽은 괴사조직을 빨리 뜯어내 새 살을 돋게 하는 속도는 구더기 쪽이 빨랐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건국대병원 성형외과 신동혁 교수팀이 2005년 8월부터 2007년 2월까지 당뇨발 환자 54명 중 구더기 치료를 행한 10명과 일반 외과치료를 한 44명을 비교한 결과 구더기 치료 환자의 입원기간이 평균 39.5일로 일반 치료 군의 48.1일보다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이 발뒤꿈치에 의료용 구더기가 들어 있는 살균망을 부착하고 있다. 환자가 구더기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아 바이오백 형태로 생산하고 있다. 사진 제공 대한생물요법학회○“너무 깨끗해도 병?”
거머리, 구더기를 질병 치료에 이용하는 생물요법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위생가설’ 때문이다. 위생가설은 인류가 사는 환경이 너무 깨끗해지고 항생제와 멸균장치가 발전해도 인간의 질병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페니실린계 항생제로도 죽지 않는 메티실린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을 비롯해 아토피 같은 환경질환이 증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
난치성 장염에 활용되는 돼지편충(기생충의 일종)도 이 같은 고민에서 시작됐다. 미국 아이오와대 의대 데이비드 엘리엇 교수팀은 난치성 장염을 앓는 환자 54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에는 돼지편충, 다른 그룹에는 가짜 약을 투여했다. 연구진은 적절하게 기생충을 투여할 경우 ‘약한 경고’를 받은 우리 몸은 그에 대비하는 면역체계를 갖추게 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연구결과는 2005년 미국 소화기학회에 발표됐다.
○ 혈우병 환자는 절대 쓰면 안돼
그러나 아무 거머리나 구더기를 써서는 안 된다. 병원에서 쓰는 거머리나 구더기는 멸균 처리된 상태로 키운 것이다. 의료용 거머리 중 ‘히루도 메디키날리스’의 효과가 뛰어나지만 번식이 어려워 효능이 동일한 종으로 전세계적으로 ‘히루도 베르바나’를 영국이나 터키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혈우병 같은 혈액 응고질환을 갖고 있으면 거머리를 치료용으로 절대 써서는 안 된다. 와파린·헤파린 같은 항응고제를 복용하고 있는 환자도 쓸 수 없다. 구더기는 감염 부위에 혈관이 드러난 경우에 쓰면 염증이 일어나기 때문에 정확한 상태를 의료진과 상의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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