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외부교신-채팅욕설 감시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7일 03시 00분


■ 게이머보다 더 바쁜 사이버게임대회 심판들

15일 폐막한 ‘월드사이버게임스(WCG) 2009 그랜드 파이널’ 행사장에서 사람들은 대회 기간 내내 바쁘게 움직였다. 경기 시작 10분 전 자신의 키보드가 없어져 동분서주했던 프로게이머,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싶어 뛰어다녔던 팬들…. 그중에는 행사장을 가로지르며 ‘페어플레이’를 강조했던 게임 심판들이 눈에 띄었다. 넓은 4000평의 공간을 땀으로 채운 WCG 심판들. 그들은 각각 무슨 생각을 하며 5일을 보냈을까? 게임 심판 3명을 만났다.

○ 게이머보다 더 바쁘다

“반칙! 옐로카드 경고입니다.”

검은색 줄무늬 피케셔츠를 입은 이들. 왠지 잔디 운동장에서 축구 선수들을 향해 호루라기를 불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운동장이 아닌 행사장에서 게이머들에게 옐로카드를 날리는 이들은 게이머보다 더 바쁜 게임 심판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심판은 24개국 총 62명. ‘룰 북’에 있는 심판 룰만 50개가 넘는다. PC, 비디오게임기, 모바일로 경기를 벌이는 상황에서 왜 심판이 필요할까?

2001년 WCG 1회 때부터 스타크래프트 심판으로 활동한 KTH 콘텐츠사업팀 임민우 대리(33)는 “대회가 거듭될수록 양쪽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넣어두고 외부와 교신하거나 도청하는 ‘지능범’, 게임 내 채팅 기능을 통해 상대방에게 욕설을 하는 ‘심리범’ 등 오프라인 못지않은 ‘더티 플레이’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심판에게 경고 2회를 받은 선수는 퇴장 조치를 당한다.

심판들은 자신의 돈으로 비행기 삯을 내며 대회에 참석한다. 기간도 5일. 짧지 않은 만큼 다니던 직장에는 휴가를 내야 한다. 일종의 자원봉사를 하는 셈인데도 심판 경쟁률은 100 대 1이 넘을 정도로 치열하다.

나이와 직업도 다양하다. 이들이 처음부터 심판이 되고자 했던 것도 아니다. 온라인 당구 게임 ‘캐롬3D’ 심판인 인도의 라제시 비질라니 씨(43)는 의사다. 2007년 이 종목 선수로 참가했으나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는 “게이머로서 못다 한 한을 풀기 위해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심판을 하게 됐다”며 “내가 직접 게임을 하진 않지만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또 다른 즐거움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WCG를 찾을 정도로 열성이다. “처음엔 다 큰 어른이 게임만 한다며 구박도 받았지만 이제는 아내가 취미 생활의 하나로 이해해 준다”고 말했다.

○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그러나 내년에 또

심판에게는 게임에 대한 이해와 영어 실력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조건이 있다. 비디오게임 ‘기타 히어로 월드 투어’ 심판으로 활약한 호주인 토머스 클라크 씨(22·싱가포르 텔레커뮤니케이션 엔지니어)는 ‘엄마’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순히 경기 심판만 하는 게 아니라 경기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선수, 스태프, 관객 모두를 조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말만 하던 이들은 “힘든 것 없냐”는 질문에 앞 다퉈 ‘곡소리’를 냈다. 5일 내내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인파를 뚫고 움직이지 못해 끼니를 거른 적도 많다. 모두들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버틴다”고 입을 모았다.

임 씨는 “올해 62명 중 한국인 심판은 5명뿐”이라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클라크 씨는 “한국 게이머들의 실력에 놀랐다”며 “워크래프트3 게임의 장재호 선수 팬이 됐다”고 말했다.

청두=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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