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중국) 공안 불러, 공안!” 온순하던 관객들이 한순간에 ‘럭비 선수’로 변하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15일 오후 중국 청두(成都) ‘뉴 인터내셔널 컨벤션 & 익스포지션’ 행사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어깨로 밀며 몰려드는 중국 관중에 행사 진행요원도 속수무책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프로게이머인 한국의 이제동 선수(19)를 만나는 것. 세계 게임 올림픽 대회인 ‘월드사이버게임스(WCG) 2009 그랜드 파이널’ 마지막 날 벌어진 스타크래프트 결승전에서 이 선수는 동료인 송병구 선수(21)와 맞붙어 우승을 차지했다.》 “꺅∼ 완소제동이다” 중국 광팬 2만여명 대회장 비명-환호
65개국 中청두서 5일간 열전 한국 ‘스타크’ 금 은 동 싹쓸이 “베이징서 비행기 타고 왔어요” 중국 대륙 e스포츠 열기 후끈
대회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스타크래프트 결승전은 한국 선수들끼리 맞붙었지만 관중석에는 2만여 명의 중국인이 몰렸다. 이들은 ‘밀어 부텨(붙여)’ ‘완소 제동’ 등 삐뚤빼뚤 손수 쓴 한국어 응원카드를 흔들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 한국 ‘스타크’ 선수 왔다… 미어터진 장내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따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독일 쾰른에서 열린 대회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이자 2001년 대회 시작 이후 통산 5번째 종합 1위다.
올해 9회째인 이번 대회는 11일부터 5일간 열렸다. 총 65개국 565개 팀에서 600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한국은 11개 종목에 19개 팀 26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한국이 2년째 우승한 건 스타크래프트에서 이제동, 송병구, 김택용 선수가 금 은 동메달을 싹쓸이한 덕분. 최근 중국의 e스포츠 붐을 반영하듯 ‘한 수’ 배우러 온 관객들은 이들의 경기를 숨죽이며 지켜봤다. 경기 후에도 한국 선수들을 찾아 4000평이 넘는 공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장면도 목격됐다.
“베이징에서 비행기 타고 왔다”는 한 10대 팬은 “이제동 선수가 묵고 있는 호텔 로비까지 찾아가 사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선수는 “우승 후 중국 관객들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는데도 열광할 정도”라며 “한국의 영향을 받아 중국 내 온라인 게임의 인기가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5일간 관람객 수는 8만2000여 명이나 됐다.
총상금 28만 달러(약 3억2828만 원)가 걸린 이번 대회에서 준우승은 스웨덴(금 1, 은 2)이, 3위는 독일(금 1, 은 1, 동 1)이 차지했다. ‘워크래프트 3’ 종목에서 자국 선수들끼리 결승전을 치러 금, 은메달을 딴 중국의 선전도 두드러졌다. 금메달 유력 후보로 알려졌던 우리나라의 장재호 선수는 이들에게 밀려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 또 다른 10년… 아쉬운 부분도
WCG는 삼성전자가 후원하는 세계적인 게임 올림픽. 초창기만 해도 집안 경기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지만 9회째가 되면서 참가국이 늘어나고 개최지도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제기되고 있다. 2001년 37개국 430명으로 시작된 WCG는 지난해 78개국 800명을 기록하며 규모 면에서 계속 성장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또 콘솔 게임이 많지 않고 스타크래프트 같은 PC게임이 전체 종목의 절반을 차지하는 데다 모바일 게임은 아직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WCG의 정체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타나고 있다. 당초 기업(삼성전자)과 정부(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후원하다가 2007년부터 삼성전자가 단독 후원하면서 ‘대기업 대회’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주관사인 월드사이버게임스도 삼성전자의 자회사. 특히 문화부가 후원하는 국제e스포츠연맹(IeSF) 주최의 국제게임대회가 조만간 강원 태백시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국제게임대회가 민간 대 정부 구도로 대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월드사이버게임스 김형석 대표는 “지금까지 10년간 규모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 10년은 국내 게임들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해 해외에 알리는 등 국내 e스포츠를 질적으로 확대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