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사대장 권영인 박사의 고군분투 도전기
몸 망가지고 배는 난파… 거액 스카우트 제의에 솔깃
“지금까지의 나를 넘기위해” … 유혹 뿌리치고 다시 대장정
권영인 박사(49)는 ‘범생 과학자’였다. 첫 직장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20년을 근무했다. 연구원에서 그가 이끌던 탐사대는 2007년 동해에서 ‘불타는 얼음’을 발견했다. 대체 에너지로 주목받던 가스 하이드레이트였다. 두둑한 연구비와 안정된 지위를 보장받았지만 그는 몇 달 뒤 사표를 냈다. 퇴직금이 필요했다. 마이너스통장까지 만들어 요트를 샀다.
20년을 다닌 첫 직장을 그만둘 때 선후배들이 밤에 집으로 와 “교도소 갈 사고 친 거 아니면 그냥 있으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어릴 적 과학잡지를 보며 키워왔던 세계 해양탐사의 꿈은 오랜 염원이었다.
들뜬 마음에 시작된 항해는 후회의 연속이었다. 집채 같은 파도가 지나가고 나면 끝없는 지루함이 찾아왔다. 출렁이는 배에서 요리는 언감생심이었고 엔진 옆에 간이침대를 놓다 보니 엔진에서 나오는 유황냄새 속에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몸을 동여매도 파도가 3, 4초 간격으로 찾아왔다. 배 위에선 허리를 펼 수 없고 걸을 곳도 없다 보니 몸은 서서히 굳어갔다. 비바람을 피해 배에서 항구로 뛰어내리다 척추마저 휘었다. 권 박사는 “하루 한갑씩 태우던 담배가 속이 울렁거려 피울 수가 없더라”고 했다.
더 힘겨운 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첫 배인 장보고호가 지난해 3월 난파되자 한 명 있던 선원마저 떠나갔다. 헐값에 배를 넘기고 나니 새 배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할 만큼 했고 위험하니 후일을 도모하자”는 주변의 만류가 시작됐다. “성공하지도 못할 일을 호언장담하다 망가졌다”는 비아냥거림도 들었다.
항해 포기를 고심하던 차에 탐사 장비를 대준 독일 장비회사 사장이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 권 박사는 “고액 연봉은 둘째 치고 아이들에게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정말 고민이 컸다”고 했다.
그 유혹을 그는 끝내 뿌리쳤다. “남은 인생을 ‘리셋’하고 싶어서 절정의 자리를 박차고 나왔는데 지금 돌아가면 앞으로 나를 넘는 도전은 못할 거예요.”
“후회가 없느냐”는 물음에 권 박사는 소리 없이 웃었다.
“매일같이 아침 동트는 모습을 보면서 커피, 저녁엔 노을을 보며 맥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배 타는 게 백만장자로 사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에요.”
권 박사에겐 이제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 한국 도착 전 중간 기착지인 하와이에서 가족과 상봉하기로 했다. 갈라파고스에서 출항을 위해 엔진 시동을 걸던 권 박사의 말. “초등학생 아들하고 고등학생 딸이 있는데 한창 예쁠 때야. 얼굴 보려면 살아서 가야지. 아자! 아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