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숙 씨(62·여)는 극심한 오른 다리 통증으로 3개월째 고생하고 있다. 통증을 줄인다는 주사도 병원에서 맞아보고 침도 맞고 약도 먹는데 통증은 그대로다. 날씨가 추울수록 통증은 더 심해져 잠도 못 이룰 정도. 걸을 때마다 통증이 더해 외출을 못 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병원에 가도 뾰족한 수가 없어 더 답답하다는 김 씨. 그녀가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김 씨와 같은 환자가 적지 않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가 저려 걷기도 힘든데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면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나온다는 것.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견딘다. 통증이 심한 환자는 병원을 찾아 무작정 수술을 원하기도 한다.
뼈가 약해지면 척추 사이 간격이 좁아지고 신경이 지나가는 공간도 좁아진다. 이 같은 증상은 중년 이후 척추의 퇴행이 상당 수준 진행된 환자에게 주로 발생한다. 척추수술 후에도 통증이 그대로인 환자는 ‘척추수술 실패증후군’으로 진단한다. 상당수 환자가 ‘원외측 척추질환’을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고 엉뚱한 부위에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다.
척추관절전문 21세기병원의 배재성 부원장은 “김 씨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요통과 하반신 통증의 원인은 원외측 부위 질환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원외측은 뇌부터 척추로 이어진 신경줄기에서 신경가지가 뻗어나가는 부위를 말한다. 신경이 지나는 중심관 밖이라고 해서 원외측 또는 극외측이라고 불린다. 신경가지가 나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신경공이라고도 불린다. 원외측추간판탈출증(디스크)과 신경공협착층(또는 원외측협착증) 등이 대표적인 원외측 척추질환이다.
원외측 척추질환의 구체적인 증상은 허리 통증을 동반한 하반신 통증이다. 걷는 것도 어렵다. 심할 때는 마비가 온다. 원외측추간판탈출증과 신경공협착증은 신경의 가장 예민한 부위인 신경절이 압박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디스크 통증보다 통증 강도가 훨씬 심하다.
특히 고령 환자의 경우 디스크 증상을 보이면서 신경관 내에 특별한 압박 부위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원외측 척추질환일 확률이 높다. 불과 15년 전만해도 원외측 척추질환은 전체 척추질환 중 5% 미만에 불과했다. 대학병원에서도 수술사례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원외측 척추질환은 전체 척추질환의 10∼20%를 차지한다. 21세기병원의 수술사례만 해도 연간 300건 이상이다. 요추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을 예로 들면 신경관 내 발생 비율은 80%, 원외측 발생 비율은 20% 정도로 추정된다.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환자 10명 중 2명이 원인도 모른 채 고통을 받았다는 의미다.
배 부원장은 원외측 척추질환이 과거보다 크게 늘어난 이유에 대해 “과거에 없었던 질환이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원인을 알 수 없었던 통증의 원인을 정확히 알게 돼 치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MRI검사로 정확한 척추질환 원인 찾아
오랫동안 많은 요통환자를 괴롭혔을 원외측 척추질환의 치료가 시작된 결정적인 이유는 진단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자기공명영상(MRI)촬영검사가 보편화되면서 척추의 입체 영상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특히 MRI는 기존의 컴퓨터단층촬영(CT)에 비해 해상도가 뛰어나 세부조직을 더 정확히 볼 수 있다. 배 부원장은 “최근 척추 단면뿐 아니라 측면, 사선면(반관상면)으로도 촬영해 신경가지와 신경말단, 신경이 나가는 길까지 모두 확인하고 진단한다”고 말했다.
검사기술이 진화하면서 원외측 척추질환 진단은 과거보다 한결 수월해졌다. 새로운 진단방법과 원외측 척추질환의 양상을 알게 된 이들은 학회와 논문 발표를 통해 의료계에 알렸다. 21세기병원은 2005년 대한신경외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5년간의 진단사례, 수술사례를 모아 ‘원외측 MRI 검사의 정확한 기법’을 주제로 발표했다.
○ 손상 부위, 증상의 연관성을 정확히 찾아야 올바른 진단 가능
“원외측 척추질환의 양상과 진단법 등이 많이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모두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만족스러운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외측 척추질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의 충분한 임상경험입니다.”(배 부원장)
영상에 나타난 손상 부위와 환자가 느끼는 증상 간의 연관성을 정확히 찾아야만 올바른 진단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는 의사의 경험이 결정적이다.
21세기병원이 선택적 신경차단술을 시행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배 부원장은 밝혔다. 통증 유발부위로 짐작되는 신경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면서 통증이 나아지는지를 확인하는 것. 통증을 역으로 추적해 치료가 필요한 부위를 정확하게 찾아낸다. 이런 노력은 수술 후 재발률을 줄이고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진단이 정확하면 치료도 그만큼 간단해진다. 일반적인 추간판탈출증이나 척추관협착증 치료와 마찬가지로 내시경이나 현미경레이저를 이용해 신경을 압박하는 디스크를 제거하면 된다.
협착이 심하게 진행돼 척추 뼈 사이의 간격이 많이 좁아졌다면 인공디스크를 이용해 뼈 사이의 간격을 복원하고 신경이 지나는 길을 확장시키는 척추유합술이 시행되기도 한다.
원외측을 비롯한 척추질환은 경미한 손상이라도 방치하면 주변 근육과 인대가 함께 손상돼 만성화되는 경우가 많다. 당장은 통증이 사라질 수 있지만 언젠가 증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배 부원장은 “원인을 모른다거나 수술하는 것이 두렵다고 해서 척추질환을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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