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5분의1 수준 자연분만 수가 인상 필요”
‘낙태=피임’ 잘못된 인식부터 고쳐 나가야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이 의심되는 산부인과를 고발했던 3일 SBS 드라마 ‘산부인과’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산부인과’는 첫 회부터 낙태를 소재로 삼았다.
산부인과 의사인 서혜경(장서희)이 다운증후군인 태아의 낙태 여부를 고민하는 재벌가 며느리 이윤진(현영)과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자와 바람을 피우다 임신한 김연임(이의정)을 진료하는 내용이다.
이들을 맡은 서혜경 역시 유부남 의사와의 불륜을 통해 임신 중이다.
소재가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낙태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낙태로 병원 수입 보전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동료의사를 고발하는 방법을 택하면서까지 낙태 근절 운동을 벌이고 있다. 동네의원들이 모인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생명 존중이라는 가치를 정면 반박하지는 못하지만 병원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사회는 낙태를 피임처럼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미혼모가 자립하기 힘든 경제적 여건 등 다양한 원인을 간과한 채 산부인과 의사를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낙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지난해 12월 소속 산부인과 의사 469명을 상대로 불법 인공임신중절 수술 예방 방안 마련을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불법 인공임신중절을 하지 않으면 병원 경영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매우 그렇다’ 26%, ‘약간 그렇다’ 48%로 나타났다. 산부인과 의사 74%가 불법 낙태를 하지 않으면 병원 경영에 지장이 있다고 대답한 것이다. 특히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은 대학병원 의사가 54%인 반면 개원의가 83%로 나타나 동네의원일수록 낙태수술 수입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회는 이 결과를 공식 발표 하지는 않았다.
2008년 국내 최대 분만건수를 기록한 제일병원조차 56억 원의 적자를 냈다. 대부분 대학병원도 분만실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공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험수가 비교분석표’에 따르면 한국의 자연분만 수가는 다른 OECD 국가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 A산부인과 의사는 “1박 2일 동안 힘들게 자연분만을 해도 수가는 맹장수술과 비슷하다”며 “산부인과가 비현실적인 수가를 참아온 것은 낙태수술로 이를 보전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산부인과 의사는 “아기만 받아서는 병원 운영이 되지 않는다”며 “프로라이프 의사회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분만 수가 인상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낙태 범위 규정한 모자보건법도 문제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정부가 불법 낙태를 적극적으로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조사에서 ‘현행 모자보건법이 지나치게 엄격하여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응답이 80%가 넘었다. ‘현실적으로 예외항목이 필요하다’가 55%, 아예 낙태를 양성화하고 예외적 경우에만 금지하도록 ‘기준을 더 완화해야 한다’가 28%였다.
1973년 제정한 모자보건법은 △본인, 배우자가 우생학적 혹은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한 경우 △임신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히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다섯 가지 조건일 때만 낙태를 인정한다. 2005년 보건복지부 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35만여 건의 낙태가 시술되며 이 가운데 95.6%가 불법으로 파악됐다. 불법 낙태 단속을 하게 되면 산부인과 의사 대부분을 처벌해야 한다.
김상운 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은 “현재 모자보건법으로는 태아가 태어나자마자 죽을 가능성이 높은 기형을 가지고 있어도 낙태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노준 산부인과의사 회장은 “의학적으로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사유를 포함해 법을 현실에 맞게 고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의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정부에 모자보건법 개정을 건의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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