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보다 ‘정적 깨질때’ 출발 더 빠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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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의 과학


《“레디… 탕!” 출발 직전의 순간.
겨울올림픽의 스피드스케이팅은 2초, 쇼트트랙은 1초에 불과한 ‘…’의 시간 동안 선수들의 긴장과 집중력은 최고조로 오른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을 듣기 위해서다. 하지만 빨리 출발하려는 마음이 앞서 부정출발을 저지르기도 하고 실수하지 않으려다 다른 선수보다 늦게 출발하기도 한다.》

밴쿠버 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도 결승 1차 시기에서 부정출발을 했고, 쇼트트랙 여자부 경기에서는 심판이 총을 늦게 쏴 부정출발이 무더기로 나왔다. 부정출발의 위험을 줄이고 남보다 뒤처지지 않는 ‘최선의 출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경과학자들이 밴쿠버 올림픽에 맞춰 흥미로운 조언을 던졌다.

소리-정적, 뇌전달 신경신호 서로 달라
“레디” “탕” 사이 정적 집중하는게 효과적

○ 욕심 버리면 최고속력에 빨리 도달

먼저 남보다 빨리 출발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총성을 듣고 빨리 출발한다는 전략보다 남이 움직이면 무조건 출발한다는 작전이 오히려 출발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온라인판 2월 3일자에는 “특정 조건을 판단해서 먼저 움직인 사람보다 그 사람을 보고 반사적으로 움직인 사람의 행동속도가 9% 더 빠르다”는 영국 버밍엄대 앤드루 웰치먼 교수팀의 연구결과가 소개됐다.

연구팀은 버튼을 눌러야 이기는 간단한 ‘가상 결투’ 상황을 만들었다. 한 사람은 신호에 맞춰 세 버튼 중 하나를 최대한 빨리 누른다. 다른 사람은 별다른 판단을 하지 않고 단순히 앞 사람이 버튼을 누르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최대한 빨리 버튼을 눌렀다. 그 결과 나중에 움직인 사람이 버튼을 누르는 속도가 9% 더 빨랐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잘못된 버튼을 누르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움직이기보다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편이 행동속도가 빠른 셈이었다.

이 연구결과는 겨울올림픽 경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출발선에 서 있다가 갑작스레 들리는 큰 소리가 총성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달려 나가는 전략 대신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무조건 뛰어나간다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웰치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할 때 부정출발도 줄이고 출발 순간은 조금 늦더라도 가속도를 최대로 만들어 빨리 최고속력을 낼 수 있는 셈이다.

남의 움직임 보고 출발하는 리액션
판단후 움직인 사람보다 9% 빨라

○ 총소리보다 정적을 듣는다

프로야구에서 도루를 시도하는 주자들은 투수의 고개나 발의 움직임을 보고 반사적으로 뛰기 시작한다. 실제로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던지는지, 주자를 견제하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뛰기보다 특정 움직임에 무조건 뛰는 편이 더 빠른 속도를 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프로야구에서 도루를 시도하는 주자들은 투수의 고개나 발의 움직임을 보고 반사적으로 뛰기 시작한다. 실제로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던지는지, 주자를 견제하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뛰기보다 특정 움직임에 무조건 뛰는 편이 더 빠른 속도를 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두 번째 조언. 출발선에 섰을 때는 ‘탕!’ 소리보다 ‘레디’와 ‘탕’ 사이, 즉 ‘…’에 해당하는 정적에 귀를 기울여야 더 빨리 출발할 수 있다. 언제 울릴지 모를 총성을 기다리거나 갑작스레 들리는 큰 소리를 판단하기보다 정적에만 집중하다가 정적이 깨지는 순간 무조건 출발하는 것이다.

‘정적을 듣는다’는 말은 얼핏 모순처럼 들린다. 하지만 미국 오리건대 마이클 웨어 교수팀은 “소리가 들리는 ‘청음 신호’와 아무 소리도 없는 ‘무음 신호’는 귀에서 뇌로 전달될 때 각각 다른 통로를 이용한다”고 과학학술지인 ‘뉴런’ 2월 11일자에 발표했다. 정적, 즉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태를 뇌는 들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귀는 소리를 들으면 이를 일련의 신호로 바꿔 대뇌 측두엽에 있는 청각피질로 보낸다. 이때 소리 신호는 여러 개의 신경섬유가 연결된 ‘시냅스 채널’을 지난다. 기존에는 특정한 소리가 잠깐의 정적과 함께 한 시냅스 채널로 통과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예를 들어 째깍째깍 하는 시계소리를 들으면 ‘째깍’과 잠깐의 정적을 서로 연결된 하나의 소리 신호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 뇌는 ‘째깍’과 정적을 서로 다른 소리 신호로 인식했고 각각 다른 시냅스 채널을 이용했다. 오리건대 연구팀은 쥐에게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고 시냅스 채널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폈다. 그러자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반응하는 채널과 소리가 사라질 때 반응하는 채널이 서로 달랐다. 정적만 듣는 시냅스 채널이 따로 존재했던 것이다. 웨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선수들이 총성을 듣고 빨리 출발하는 훈련을 하듯 정적이 깨질 때 출발하는 훈련을 반복하면 무음 신호를 처리하는 시냅스 채널을 강화할 수 있는 셈이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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