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맹점을 찌른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유도 경기를 중계하던 아나운서가 맹점을 운운하자 지혜가 질문했다. “그건 얼른 알아채지 못하는 상대의 약점을 이용한다는 뜻이겠지.” “그럼 맹점이 나쁜 건가요?” “왜?” “찔리니까요.” “글쎄.”
맹점이라는 단어는 완벽할 것 같은 곳에 숨어 있는 허점을 뜻한다. 유도에서 강하고 빈틈없이 보이는 상대 선수의 힘을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선 상대방도 모르고 있는 허점을 찔러 나가야만 한다.
“지혜야, 맹점을 보여줄까?” 하자 “맹점은 보이지 않는 것 아니에요?” 한다. 물론 맹점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의미하지만 경험할 수는 있다. 한번 해 보자.(그림) 오른쪽 눈을 가리고 30cm 정도 되는 곳에서 왼쪽 눈으로 오른쪽 원의 중심을 본다. 그런 후 앞뒤로 거리를 조금씩 움직이면 어느 순간 좌측의 별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별이 맹점에 맺힌 순간이다. 눈앞의 시야 속에 보이지 않는 곳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망막의 한 곳에 시세포가 없어서 빛이 닿아도 느끼지 못하는 곳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안과의사가 아니라 프랑스의 물리학자 에듬 마리오트이다. 이탈리아의 그리말디가 빛의 간섭과 회절현상을 발견했고 덴마크의 뢰머가 최초로 빛의 속도를 측정했던 1660년경 ‘빛의 시대’에 마리오트는 빛을 보지 못하는 맹점을 발견한 것이다.
15년 전 전공의 시절에 넋을 잃고 쳐다본 사진이 하나 있다. 블랙홀처럼 그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중심부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거대한 혈관들이 솟아오르고, 그 주변에는 화염이 살아서 이글거리듯 수많은 모세혈관들이 소용돌이치며 올라오는 모습이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어디를 찍은 것인지 알아보았는데 바로 맹점이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곳이라고 하기엔 너무 역동적이었다. 망막의 중심에서 귀 쪽으로 3.5mm, 아래쪽으로 1mm에 위치한 맹점의 정체는 눈에서 시신경이 시작되는 시신경유두라는 곳이다. 볼 수 있기 위해서 볼 수 없는 곳이 있는 셈이다. 맹점이 커지거나 모양이 이상해지는 질환에는 시신경염증, 고혈압으로 인한 시신경유두부종, 초기 녹내장을 들 수 있다.
망막에서 맹점은 생각보다 크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늘의 크기를 눈의 크기라고 한다면 맹점은 그 하늘에 보름달을 나란히 10개 세운 정도로 크다. 양쪽 눈에 각각 이러한 맹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손을 써 놓았다.
“그런데 아빠, 왜 미국 사람은 맹점을 손가락으로 찔러요?” “손가락이라고?”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조금 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영어사전에는 ‘맹점을 찌르다’가 ‘put her finger on his blind spot’으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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