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가 나자 부산대 지진방재연구센터 실험동에 놓인 2층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 두 개가 중저음의 소리를 내며 약 1초 동안 전후좌우로 흔들렸다.
하나는 큰 균열이 가고 곳곳에 잔금이 생겼지만 다른 하나는 멀쩡했다.
정진환 센터장은 “멀쩡해 보이는 구조물은 하부에 진동의 전달을 막는 ‘면진’ 설계를 했기 때문에 균열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0.35G는 규모 6 정도의 지진에 해당한다.》
● 내진
외벽을 철골구조로 보강
완파 막지만 재사용은 못해
● 면진
땅-건물사이 베어링 등 설비
균열-흔들림 막아 재사용 가능
● 제진
꼭대기에 쇳덩이나 수조설비
건물 충격 흡수해 진동 완화
지진방재연구센터에는 원하는 크기와 방향의 힘을 일정 시간 거대한 구조물에 가할 수 있는 ‘지진 진동대’가 3개 있다. 가운데 진동대는 국내 최대 규모로 60t의 무게를 올려놓고 전후좌우로 흔들며 회전을 시킬 수 있다. 실제로 사람이 살 수 있는 2층 건물을 올려놓을 수 있다. 이날 실험은 다양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반 구조물과 면진 설계를 한 구조물의 피해를 비교하기 위해 진행됐다.
○ 고층건물 흔들림 ‘시어 키’로 제어
면진 설계는 지진이 발생해도 건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건축 기술이다. 내진 설계와 비슷해 보이지만 진동에 대처하는 원리가 다르다. 내진 설계는 철근콘크리트 기둥을 세울 때 철근을 더 많이 넣거나 건물 외벽을 철골구조로 보강해 지진에 견디는 것이다. 지진으로 건물에 균열이 생기거나 쪼개지더라도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완전붕괴’를 막기 위한 조치다. 사상자는 줄일 수 있지만 한번 금이 간 건물을 다시 사용할 수는 없다.
면진 설계는 건물을 땅에 고정하지 않기 때문에 지진으로 땅이 흔들려도 건물은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땅과 건물 사이에 고무판이나 단단한 구름쇠(베어링)를 넣어 땅의 진동이 건물에 전해지지 않도록 막는다. 이동근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면진 설계를 한 건물은 지진이 끝난 뒤에도 계속 쓸 수 있다”며 “내진 설계가 펀치를 맞고도 쓰러지지 않게 맷집을 키우는 것이라면 면진 설계는 펀치를 맞지 않도록 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고층건물에 면진 설계를 적용할 때다. 고층건물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끔 발생하는 지진보다 언제라도 불 수 있는 강풍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땅에 고정되지 않은 건물은 지진에는 강하지만 건물 자체를 흔드는 바람에는 속수무책이다. 바람에 따라 건물이 심하게 흔들린다면 실내에 있는 사람은 멀미를 일으킬 수 있다.
이 교수는 “최근에는 ‘시어 키(shear key)’ 기술로 고층건물에도 면진 설계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상시 시어 키는 면진 설계가 된 건물이 강한 바람을 맞아도 흔들리지 않도록 건물 일부나 베어링을 붙잡아 고정한다. 하지만 일정 크기 이상의 지진이 일어나면 시어 키가 깨지면서 건물도 땅에 고정됐던 상태가 풀린다. 결국 땅이 흔들려도 건물은 흔들리지 않게 된다.
○ 지진 피해 줄이는 꼭대기 쇳덩어리
지진에 견디는 방법 중에는 진동을 줄이는 ‘제진’ 설계도 있다. 펀치를 맞는 순간 몸을 뒤로 빼며 충격을 줄이는 원리다. 제진 설계는 면진 설계와 달리 대부분 건물 꼭대기에 한다. 상부로 갈수록 진동의 폭이 커지기 때문이다. 고층건물 옥상에 커다란 쇳덩어리가 매달려 있거나 수조가 있으면 제진 설계가 된 것이다.
쇳덩어리나 수조는 각각 동조질량감쇠기(TMD)와 동조액체감쇠기(TLD)라고 불리는 제진 장치다. 둘은 모두 건물과 비슷한 고유진동수를 갖는다. 정형조 KAIST 건설 및 환경공학과 교수는 “건물과 같은 진동수를 가진 물체가 상부에 있으면 지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 대신 흔들리며 지진에너지를 소모해 전체가 떨리는 현상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지진에도 진동수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진동수와 건물의 진동수가 일치하면 진동이 증폭되는 ‘공명’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정 교수는 “지진의 진동수는 거의 정해져 있어 제진 설계가 무용지물이 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공명 현상을 막기 위한 반능동형 제진 설계가 개발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예측하지 못한 지진이 일어날 때 TLD의 수위를 조절하는 등 고유진동수를 바꿔 대응하는 것이다. 정 교수는 “아직 널리 활용되지는 않으며 일본에서 검증용으로 몇 군데 설치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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