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 의료기술 65건 선정에 대학병원들 반발… 해외마케팅 시작부터 ‘삐걱’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5일 03시 00분


“선정 절차 -기준 부실… 재조사 하라”


“취지 설명 없이 팩스 한 장 보내”
대형대학병원 참여 41%에 그쳐

보건산업진흥원 “2차 평가할것”
기존 선정의술도 재검증 받을 듯

한 대형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최근 보건산업진흥원이 간 이식 등 우수의료기술 65건을 선정해 발표했으나 일부 병원이 “기준이 모호하고 선정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 대형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최근 보건산업진흥원이 간 이식 등 우수의료기술 65건을 선정해 발표했으나 일부 병원이 “기준이 모호하고 선정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한국을 대표할 만한 의료기술 65건을 선정해 책자로 만들자 국내 대형 병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일부 대학병원은 보건산업진흥원이 ‘날림’으로 의료기술을 선정했다며 재조사까지 요구할 태세다. 보건산업진흥원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 어떻게 선정했나

보건산업진흥원은 지난해 하반기, 해외환자 유치 의료기관으로 등록한 병·의원을 상대로 내세울 만한 의료기술을 10개 이내에서 제출토록 했다. 대학병원 29곳 중 12곳을 비롯해 총 93곳의 의료기관이 240건의 의료기술을 제출했다.

진흥원은 대한의학회에 기술 검증을 요청하려고 했지만 돈과 시간이 많이 들 것으로 판단해 포기했다. 그 대신 각 의학회에 소속된 전문가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검증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전문가들은 의료기술을 한 달간 검증한 뒤 최종적으로 65건을 선정했다.

진흥원은 65개 의료기술을 모아 ‘2009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우수의료기술 디렉토리 북’을 만들었다. 이 책자는 이미 일부 병원에 배포됐으며 앞으로 여행사와 의료보험회사 등 해외 환자 유치와 관련된 기관에 배포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참여했지만 우수 의료기술로 선정되지 못한 병원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형 대학병원은 총 29곳, 종합병원은 59곳에 이른다. 그러나 이 가운데 이번 조사에 참여한 기관은 각각 41%와 20%에 그쳤다. 일반 의원의 참여율도 매우 저조하다. 치과의원(3.8%) 의원(6.4%) 한의원(4.6%)의 참가율이 모두 한 자릿수에 그친 것.

○ 대학병원 강력 반발

서울대병원이 가장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고위 관계자는 “진흥원이 취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환자를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질환 2건만 제출했다”며 “다른 병원들은 10건 제출해 모두 채택됐는데, 결과적으로 우리만 손해 본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선정기준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조만간 재조사를 정식으로 요청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병원은 절차상의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진흥원은 지난해 5월 이후 해외 환자 유치기관으로 등록한 의료기관 1245곳 모두에 공문과 팩스, e메일로 사업 내용을 알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적지 않은 대학병원이 공문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서울성모병원은 “당시 진흥원에서 공문이 아니라 유선상으로만 요청을 했다”며 “제대로 된 공문만 받았어도 충분히 준비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림대도 “지난해 진흥원에 회원 가입을 했지만 팩스만 달랑 보내와 우리 측에서 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길병원도 “우리는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해 처음부터 정부와 협력을 해 왔다”며 “그러나 나중에 내부적으로 확인해 보니 팩스 한 장 온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 ‘우수의료기술 맞나’ 논란도

일부 병원은 이번 책자에 소개된 의료기술이 국내를 대표하는 의료기술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학병원의 한 관계자는 “책자를 보면 대학병원보다 개업의들의 의료기술이 훨씬 많은 느낌이다”며 “1차 의원인 개업의의 기술이 대학병원을 능가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개원의 쪽에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진흥원이 후원하는 해외 환자 유치기관에 등록하지 않은 병원들은 의료기술 평가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것. 성형외과의 한 원장은 “진흥원이 병원을 상대로 장사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며 “진흥원의 상급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부터 정신을 차려 제대로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진흥원 “2차 조사 실시하겠다”

병원들의 반발이 의외로 강경하자 진흥원은 “이번에 선정한 의료기술이 학술적으로 우수하다는 뜻이 아니다”며 한발 물러섰다. 진흥원 관계자는 “이번 책자는 단순히 마케팅용으로 제작된 것이다”며 “병원의 자발적인 참여가 적었기 때문에 일단 제출된 의료기술만 대상으로 평가한 것이다”고 말했다.

진흥원은 즉각 2차 평가를 실시키로 했다. 많은 병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4월 중순까지 신청을 받기로 했다. 이와 함께 병원들 사이에 잡음이 일지 않도록 대한의학회에 의뢰해 우수의료기술 평가위원회를 따로 만들 방침이다. 이 경우 이미 선정된 의료기술의 재검증 작업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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