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코리아]1만분의 1… 기적을 만드는 ‘음지’의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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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7일 03시 00분


신약개발 하루 25시간 불가능을 깨는 제약사들

그래픽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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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팬데믹(pandemic·전염병 창궐)’인 신종 인플루엔자A(H1N1)가
‘지구촌 마을’을 덮친 지난해, 세계는 치료제와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신종 플루 감염자 수가 급증하면서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품귀현상까지 빚어졌다.
사회 각계에서는 “예방 백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백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는 얼마 없었지만 한국에는 다행히 녹십자가 있었다.
녹십자가 신속하게 백신을 개발한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 8번째 신종플루 백신 개발 생산국이 됐다. 신종플루 이슈는 이제 과거의 일이 됐지만, 당시 긴박했던 상황은 ‘제약 주권(主權)’의 절실함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됐다. 음지에서 신약개발에 불 밝히고 있는 제약회사 연구소들이 새삼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새로운 치료제를 만드는 작업은 지금도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진행되고 있다.》

‘세계 8번째 신종플루 백신’ 저력 몰아 이번엔 “생산기간 절반으로” 도전
10여 년 뚝심 R&D-수백억 원 투자, 세계가 놀랄 획기적 신약 잇단 성공


○ 결혼도 미루게 했던 신종플루 백신 개발

녹십자의 전남 화순 소재 백신 공장. 지금은 예전의 평온함을 찾은 모습이다. 지난해 이 공장은 기숙사로 변했었다. 계절독감 백신 생산을 위해서는 대개 6개월이 필요하지만 하루가 급했기 때문. 녹십자 직원들은 모든 사생활을 포기하고 백신 개발과 생산에 매달렸다. 직원들은 추석에도 고향에 가지 못했고, 사실상 주말도 없었다. 심지어 결혼식을 미루는 직원도 생겼다. 화순공장 생산1팀 김경민 대리는 “내가 자리를 비우면 신종플루 백신 생산 일정이 늦춰질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며 “신부와 부모님을 설득해 결혼을 미뤘었다”고 말했다.

녹십자는 지난해 6월 신종플루 백신 제조용 균주를 입수한 후 백신 개발에 본격 착수, 비임상시험과 임상시험을 거쳐 10월 말 세계에서 8번째로 신종플루 백신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녹십자는 이제 세포배양 방식의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에 도전장을 던졌다. 동물세포를 이용해 만드는 백신은 유정란을 이용해 만드는 백신에 비해 생산기간을 절반 이하로 단축시킬 수 있다. 녹십자는 “세포배양 방식 백신 개발이 완료되면 팬데믹 수준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신속하고 유연하게 백신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 끈질김과 열정, 꿈으로 도전


이달 초에 또 하나의 신약 개발 소식이 들려왔다. 보령제약은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고혈압치료제 ‘피마살탄(Fimasartan)’의 신약 허가 신청을 했다. 보령제약이 이 약을 개발하는 데는 무려 12년이 소요됐다. 투자금액은 총 500억 원 규모.

녹십자 백신에 비해 보령제약 피마살탄 개발에 훨씬 오랜 시간과 많은 돈이 투자된 이유는 약 개발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피마살탄과 같은 화학합성신약은 후보 물질 도출부터 독성실험, 임상 1∼3상 등을 모두 밟아야 한다. 후보 물질 도출은 1만 개 중 1개만 발굴해도 성공적이라고 할 만큼 힘든 과정이다. 반면 인플루엔자 백신은 항원을 조금 변형시키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이 훨씬 덜 걸린다.

보령제약은 “끈질김과 꿈이 없었다면 어렵고 긴 과정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지한 보령제약 중앙연구소장은 “고혈압 약의 경우 평생 복용하는 약이기 때문에 효과는 물론 부작용, 독성 등 수많은 변수를 놓고 많은 시험을 통해 검증해야 했다”며 “최고 경영자의 의지뿐 아니라 연구자의 끈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신약 개발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 도전

최근 제약업계는 항체치료제와 바이오 시밀러를 중심으로 하는 바이오 의약품 연구 개발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바이오 의약품은 기존 합성 의약품의 매출 성장 둔화에 대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바이오 신약은 합성 신약보다 임상시험 기간이 짧고 개발 성공률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앱지스, 한화석유화학, 유한양행 등이 항체 신약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강원도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국의 항체 연구소 스크립스의 지사를 춘천에 유치해,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 ‘스크립스코리아 항체연구소(SKAI)’를 열면서 항체 신약 개발 노하우 전수의 길목을 터줬다. 이 연구소의 김대희 박사는 “치료용 항체 후보들을 단시간에 대량 선별해 내는 최신 연구기법을 이용해 신약 개발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며 “향후 10년 내 5개 이상의 의약품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소개했다.

국내 제약업계는 고질적인 ‘리베이트’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은 가운데 ‘복제약 만드는 손쉬운 사업에 빠져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음지에서 땀 흘리는 많은 연구자와 치료제 개발에 기꺼이 투자하는 최고경영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팬데믹을 유연히 넘길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양혜영 SKAI 연구원은 “저의 꿈은 제 손을 거쳐 개발된 신약이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며 “이런 꿈같은 일을 제가 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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