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은 말은 못해도 많은 정보를 전해 준다. 법의학자들은 백골만 있어도 성별과 나이, 얼굴과 키 등을 알아낼 수 있다. 법의학자들은 시신의 부패 정도만 봐도 대략적인 사망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사람은 보통 죽은 지 하루 만에 색깔이 변하고 구더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2∼3일이 지나면 썩기 시작해 물집이 생기고, 8일이 지나면 구더기가 번데기로 바뀐다. 하지만 이 방법이 그리 정확한 것은 아니다. 주변 온도가 20∼30도 사이로 높은 환경이라면 시신은 12∼18시간 만에 급격하게 부패하기도 한다.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요즘 살인 사건에서 범인이 시신에 횟가루를 뿌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며 “횟가루가 시신 표면의 수분을 흡수해 부패를 막고 결국 사망시간이 잘못 밝혀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패를 이용한 기술이 원래 부정확한 데다 다른 방법이 많아 횟가루는 큰 의미가 없다.
부패 이외에 사망시간을 유추하는 방법은 뭘까. 체온측정법이 자주 쓰인다. 사람은 죽은 후 2시간까지는 체온이 변하지 않지만 그 이후엔 1시간마다 평균 0.8도씩 떨어진다. 체온이 다 식어버리기 전에 시신을 부검하면 대략적인 사망시간을 알 수 있다.
물론 체온은 주위 온도나 습도, 바람 등의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법의학자들은 ‘헨스게법’을 이용하곤 한다. 시신의 직장 온도를 주변온도, 체중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전후 2.8시간 이내로 사망시간을 유추할 수 있다. 신뢰도는 95%다. 이 밖에 혈액이 가라앉으며 시신 아래쪽에 생기는 시반(검붉은 점)의 크기, 시신이 굳어져 가는 사후경직 순서를 봐도 사망시간을 알 수 있다. 시반은 사망 후 30분부터 발생하기 시작해 2∼3시간 지나면 점 모양으로 나타난다. 10시간이 넘으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법의학자들은 이런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사망시간을 추측한다.
이 같은 전통적인 방법 외에 첨단 기술도 계속 연구되고 있다. 요즘 많이 연구되고 있는 ‘유리체’ 검사도 그중 하나다. 유리체는 사람의 수정체와 망막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젤리 형태의 조직이다. 사망 이후에는 유리체의 칼륨 농도가 점점 증가한다.
이 밖에 근육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글리코겐)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아직 정확도는 낮다. 김유훈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은 “같은 눈동자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칼륨의 농도가 들쑥날쑥하다”고 설명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