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갖춘 ‘명품 광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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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9일 03시 00분


육질 탱탱하고… 30% 빨리 크고… 질병에는 강해
족보 갖춘 ‘명품 광어’ 나온다

경남 거제도 앞바다에는 24시간 내내 전경의 보호를 받는 넙치(광어) 가문이 있다. ‘컴퓨터 족보’도 갖춘 뼈대 있는 가문이다. ‘육종 넙치’라 불리는 이 가문은 5일 거제 국립수산과학원 육종연구센터에서 열린 보급행사에서 갓 수정한 알 100만 개를 일반 광어 양식장에 출가시켰다. 일반 광어보다 30% 빨리 성장하고 병치레는 적은 튼실한 종자다. 탱탱한 살이 알차게 오를 이 광어들은 내년 이맘때쯤 우리 식탁에 올라올 예정이다.

○ 커플매니저로 나선 육종연구센터

양식 광어가 널리 퍼진 2000년대 중반 들어 일부 양식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광어들이 작은 병을 못 이기고 집단 폐사하거나 기형이 된 것이다. 명정인 육종연구센터장은 “오랜 세대에 걸쳐 양식이 이뤄지며 광어끼리 근친교배가 많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근친교배는 좋은 특성이 사라지고, 나쁜 특성이 강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근친교배로 좋은 광어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2004년 설립된 육종연구센터가 ‘커플매니저’로 나섰다. 육종센터는 먼저 광어의 유전자를 분석해 성장속도 체형 면역력 탄력 맛 색깔의 6개 형질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그리고 각 특징을 갖고 있는 200∼300마리의 광어 집단을 따로 키웠다. 원하는 특징을 갖춘 광어끼리 교배하기 위해서다.

심지어 광어마다 ‘주민등록번호’와 유전자 정보가 담긴 ‘전자주민증(유전자 칩)’을 지급했다. 총 11자리로 이뤄진 번호에는 육종 광어 가문의 몇 대손(세대)인지, 언제 태어났는지 표시됐고 유전자 칩에는 어떤 형질을 갖고 있는지가 담겨 있다. 지느러미 일부를 조금 떼어 유전자를 분석하면 조상이 누구인지, 어떤 형질을 갖고 있는지 1∼2초 안에 알 수 있다.

광어의 조상까지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서다. 사실 원하는 형질을 갖춘 광어가 나오도록 하기는 쉽다. 빨리 자라고 병에 걸리지 않는 광어를 만들고 싶다면 빨리 자라는 광어와 면역력이 강한 광어를 교배하면 된다. 그러나 둘이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라면 숨어 있던 치명적인 형질이 자손에게 나타날 수 있다.

○ 컴퓨터가 광어 커플 맺어줘


이제 컴퓨터가 부모를 정하는 일만 남았다. 원하는 형질을 컴퓨터에 입력하면 센터 안의 모든 광어를 검색해 족보상 가장 먼 ‘1등 엄마’와 ‘1등 아빠’를 알려준다. 선택된 부모 광어는 커튼으로 사방을 가린 ‘산란조절실’에 들어가 알을 낳고 수정시킨다. 광어는 바다 밑바닥에 살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 쉽게 안정을 찾고 수정도 잘된다.

이렇게 만든 수정란 100만 개가 이날 일반 양식장에 전달됐다. 올해에만 1900만 개가 추가로 보급될 예정이다. 양식업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배진우 태평양수산 대표는 “지난해 빨리 성장하는 육종 광어의 알을 시험적으로 분양받아 키워봤는데 일반 광어보다 2∼3개월 빨리 자랐다”고 말했다. 그러면 출하 시기가 앞당겨져 생산 가격이 낮아지고, 광어를 스테이크로 요리해 먹는 나라로 수출할 수도 있다.

6년을 투자해 키운 새 광어가 일종의 기술 유출처럼 국외로 반출될 일은 없을까. 명정인 센터장은 “어민들에게 나눠준 육종 광어를 어미로 직접 쓰면 특정 형질이 파괴돼 기형 광어가 나온다”며 “‘터미네이션’이라는 기술인데 덕분에 기술 유출의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명 센터장은 “국내 양식장에 매년 더 뛰어난 형질을 가진 수정란을 보급해 육종 광어를 한우 같은 브랜드 상품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거제=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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