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피임약을 복용하면 정말 유방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까. 2000년대 중반부터 ‘피임약을 오래 먹으면 유방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자 피임약을 먹는 여성들은 불안에 떨었다. 2006년 미국 메이요 클리닉 크리스 칼렌본 박사팀은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이 계속 피임약을 먹으면 먹지 않은 여성보다 유방암 발병률이 44%나 높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같은 걱정은 이제 접어도 될 것 같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수년간 피임약과 유방암 사이의 상관관계를 다룬 50여 건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둘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거나 의미가 없을 정도로 미미했다고 밝혔다. 연구들의 실험 대상은 피임약을 현재 복용하고 있는 여성부터 10년간 복용한 경우, 과거에 복용했다 끊은 경우 등 다양했다. 유지훈 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있을 경우 피임약을 먹으면 위험하다는 연구결과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데 학계의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유방암 걱정 때문에 피임약 먹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피임약을 먹으면 유방암 위험이 높아진다는 분석은 피임약의 원리 때문에 나왔다. 피임약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을 적절하게 이용해 배란과 착상을 막는다. 유방암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너무 많이 분비될 때 잘 생긴다.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조절하는 피임약이 유방암 발병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오해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젊은 여성들이 유방암에 잘 걸리는 이유는 피임약 때문이 아니라 서구형 식습관과 빠른 초경, 낮은 출산율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국내 유방암 환자는 매년 평균 15%씩 급증하고 있다. 환자 중 60%는 40대 이하 젊은층이다. 반면 서구는 50대 이상이 80%를 차지하고 있다.
육류 위주의 식습관으로 콜레스테롤 섭취가 늘면 유방암에 걸리기 쉽다. 또 초경 평균 시작 시기가 매년 빨라지고 있는 데다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여성 몸 안에서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분비되는 기간이 길어졌다. 에스트로겐에 긴 시간 노출되면 암세포가 자랄 기회도 늘어난다. 유 교수는 “고령 임신일 경우 여성호르몬 변화가 불규칙해 유방암 위험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유방암을 35세 이상 여성의 중요 위험질환으로 꼽고 40대 이상일 경우 매년 1회 이상 유방 X선 촬영 검진을 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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