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경고’ 기후변화 현장을 가다]<5>기후변화 논쟁과 대책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1일 03시 00분


“빙하녹는 속도 매년 2배이상 빨라져 개도국 저탄소 경제시스템 지원해야”

슈타이너 유엔환경계획 사무총장

“서울 위치를 부산이나 제주도로 지도에 잘못 표시했다고 해서 한국이 지구상에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킴 슈타이너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사진)은 20일 동아일보 창간 90주년 기획 ‘기후변화 현장을 가다’를 위한 e메일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의 위험이 과장됐다는 지구온난화 회의론자의 주장에 이런 비유를 들었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가 2007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두 가지 오류가 발견됐다고 해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과학적 데이터 전부가 틀렸다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2035년이면 히말라야 빙하가 사라지고 아프리카의 작물 수확량이 2020년까지 절반이나 감소할 것이란 예측에 오류가 발견되면서 IPCC 등은 기후변화 회의론자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슈타이너 총장은 기후변화가 확실히 진행되고 있고 이러한 현상을 이제 알아가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온난화 과학이라는 퍼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며 “IPCC는 거의 매일 드러나는 변화의 징후라는 새로운 퍼즐 조각을 갖고 완성된 그림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빙하감시기구(WGMS)가 2008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이후 빙하가 녹는 속도가 매년 평균 2배 이상 빨라지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2003년 한 해 동안 녹은 빙하의 양이 1998년보다 3배나 많다는 것만 봐도 기후변화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슈나이더 총장은 “기후변화 위험은 이른바 ‘환경장사꾼’의 눈속임이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겪게 될 심각한 일”이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PCC가 미디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선정적으로 행동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반박했다. 또 “역설적으로 IPCC는 기후변화 학자들로부터 굉장히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듣는다”며 “저명한 학자들이 내놓은 해수면 상승 예측이 IPCC의 예측보다 더 비관적”이라고 전했다.

슈타이너 총장은 최근 각국에서 녹색성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대기 중에 방출된 온실가스 대부분은 선진국이 과거부터 배출한 것인 만큼 선진국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지만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올해 말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회의에서 성공적인 합의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개도국들이 저탄소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동아일보 자료 사진
UNEP는 환경분야 국제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이다. 슈타이너 총장은 환경정책 전문가로 유엔 사무차장을 겸임하고 있다. 슈타이너 총장은 22일부터 3일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4차 환경을 위한 글로벌 기업정상회의(B4E)’에 참석해 UNEP 지구환경대상을 시상하는 등 다양한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환경재앙엔 국경이 없건만… 각국은 논쟁만▼

11월 멕시코 칸쿤 회의서도 합의 불투명
‘저탄소 사회’ 노력-기술 전세계 공유해야


올 연말 멕시코 유명 휴양지 칸쿤에 세계인의 시선이 모아진다. 11월 29일 시작되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제16차 당사국 총회 때문이다. 과연 올해 회의는 지난해 ‘절반의 성공’에 그친 코펜하겐 회의를 넘어설 수 있을까. 미국을 비롯한 당사국들은 온실가스배출량을 법으로 규제하자는 의견을 표명했다. 규제에 반감을 보여 오던 중국과 인도 등도 입장을 바꾸는 등 겉보기에는 희망적이다.

그러나 구속력 있는 합의가 나올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해 보인다. 이달 초 독일 본에서 열린 준비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프랑스 협상대표 폴 왓킨슨 씨는 “한마디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몇몇 국가는 코펜하겐 합의를 아예 없었던 일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보 더부르 UNFCCC 사무총장은 “이번 회의에서 이렇다 할 결론이 나오지 못할지라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 논쟁에 발목 잡힌 기후변화 대응

지난해 중반만 해도 코펜하겐 회의가 지구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코펜하겐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넣어 ‘호펜하겐(hope+copenhagen)’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정작 이렇다 할 결실이 없자 지구촌의 기후변화 대응은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터진 이른바 ‘기후 게이트’ 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표류하고 있는 기후변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영국 이스트잉글리아대 기후연구소(CRU)에 있던 1000여 건의 e메일과 문서가 해킹되면서 연구자들이 입맛에 맞는 결과만 채용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사건이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논쟁도 더 뜨거워졌다. 문제는 논쟁이 정치 이슈화하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의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48%가 ‘기후변화 위협이 과장됐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보다 7%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지구촌 곳곳에선 이미 암세포처럼 기후변화의 고통이 퍼지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찾아간 방글라데시 페루 베트남 호주의 피해 현장에서는 식수 부족, 해수 범람 피해, 기후 난민의 등장, 생물의 멸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피해는 이미 국경을 넘어서 지구 공통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었다. 박용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도 “이미 국내에서도 산업 문화 생활 측면에서 이상기후가 감지되고 있다”며 “전 지구적 차원의 대응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저탄소 사회가 대안

전문가들은 우선 저탄소 사회로 나가려는 노력을 전 세계가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미 친환경건축물을 짓고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를 보급하는 일부터 신재생에너지나 인공 광합성 기술 개발 등 다양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공장이나 자동차 등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땅속에 저장하는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기술(CCS)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술적 해결책에 머물지 말고 전 지구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많다. 영국 변호사 출신 환경활동가 폴리 히긴스는 생태계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행위인 ‘에코사이드(ecocide)’를 대량학살, 전쟁범죄 등과 함께 국제범죄로 지정하자고 주장했다.

김규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youtae@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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