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뷰티]이성진 교수의 아이러브 eye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4월 28일 03시 00분


건강한 젊은 남자에게 시야의 중심부에 갑자기 동전과 같은 둥근 그림자가 가리는 증상이 찾아온다면? 안과 의사들은 대개 ‘중심장액맥락망막병증’을 의심한다.

의학 책에 나온 대로라면 과로와 스트레스가 주 원인이므로 먼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최근에 과로하신 적은 없습니까?” “글쎄요. 좀 피곤하긴 하죠.” “그럼 스트레스를 받으신 적은요?” “항상 받지요. 우리나라에 그 정도도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확신에 찬 동의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의학 책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질환은 카메라 필름에 해당하는 망막의 중심부에 물이 고이는 것이다.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 보이듯 필름은 불룩하게 솟아오른다. 필름이 구겨진 모양이니 당연히 그 부위는 초점이 정확히 맺히지 않는다. 중심부에 생긴 둥근 그림자는 바로 이 때문이다. 사진의 중심부(검은 막대) 주변에 거무스름한 부분(흰 화살표)이 물이 고여 있는 부분이다.

전공의 시절 처음 이 질환의 눈 속을 촬영할 때 깜짝 놀랐다. 초기에 번쩍하며 작은 점 한 개가 나타나더니 곧 흰 기둥이 하늘로 치솟고, 조금 후에 버섯구름이 펼쳐지며 강렬한 폭발이 일어난 듯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엄청난 광경에 마치 폭발음이라도 들은 듯 귀가 멍멍할 정도다.

“제 눈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 병은 대부분 과로와 스트레스로 몸이 안 좋을 때 옵니다. 술과 담배를 자제하시고, 2, 3개월 푹 쉬시면 물이 서서히 흡수되어 좋아질 것입니다.” “좀 빨리 낫는 방법은 없습니까? 일이 밀려서요. 허허.”

아하. 역시 환자는 일이 밀려 있었다. 그래서 눈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도 답답해하고 있다. 아무튼 눈 한쪽을 잃는 것보다는 직장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혈관 촬영에서 형광물질이 새는 곳을 레이저로 지지면 조금 빨리 회복됩니다. 물론 중심부에서 많이 떨어진 곳이어야 가능합니다. 중심부를 다치면 안 되니까요.” “재발도 되나요?” “보통 세 명 중 한 명꼴로요. 열 명 중 한 명은 세 번 이상 재발하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재발을 많이 하면 시력이 떨어질 수도 있어요.”

이 질환은 50세 이상에서도 생길 수 있다. 젊은 연령에서는 남자가 9 대 1로 많지만 50세 이상에서는 3대 1로 줄어든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노령에서 이런 증상이 생겼다면 반드시 실명의 위험이 높은 황반변성이란 병과 구별을 해 줘야 한다.

가끔 피곤할 때 코피가 나거나 입술이 부르트는 딸 지혜가 ‘왜 눈이냐’고 묻는다. 혹시 피곤에 지친 젊은이들을 쉬게 해주고 싶어서 마련된 사인은 아닐까?

코피나 입술 부르틈 정도로는 몸을 쉬게 하지 않을 테니까, 적어도 눈에 문제가 생겨야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볼 테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눈 속의 소리 없는 핵폭발은 피곤한 젊은이들을 쉬게 해주려는 사랑의 경고등과 같은 것이다.

이성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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