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혈압 약의 가격 낮추기에 나서자 의료계와 제약업계가 반발하며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최근 1000여 종에 달하는 고혈압 약의 약효가 별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저가 고혈압 약값에 맞춰 약값을 일괄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가의 고혈압 신약을 생산하는 제약회사들은 약제 간의 효과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계도 환자 상태에 따라 약을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고혈압 약값 논란 계기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최근 고혈압 치료제 131개 성분 1226개 품목의 혈압 강하력 및 심혈관계 질환 예방 효과를 조사한 결과, 모든 계열의 고혈압 약이 혈압을 내리는 데 있어 효과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이 조사는 합병증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 이에 따라 조사팀은 저가의 복제 의약품 가격 수준에 맞춰 일괄적인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합병증이 있는 환자의 경우 약 효과 차이를 인정해 약가를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이 연구에는 서울대 간호학과 김진현 교수를 주축으로 가정의학과 1명, 약대 교수 4명, 전문의 3명, 보건경제학자 1명, 통계학자 1명, 약사 2명 등이 참여했다.
현재 고혈압 약가는 10∼1300원으로 천차만별이다. 국내 고혈압 약 시장은 1조4000억 원 규모.
심평원은 지난해 고지혈증 약을 재평가해서 연간 4000억 원의 고지혈증 약 시장에서 300억∼400억 원을 절감했다. 심평원은 고혈압 약값을 내리면 1400억 원 이상의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심평원은 국민의 약값 부담 감소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국민건강을 증진하겠다는 취지에서 현재 보험에 등재된 약을 재평가해 오고 있다. 심평원은 내년에 순환기 쪽 약물을 재평가할 예정이어서 약가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제약사와 의료계의 입장
의료계는 고혈압 약효가 환자의 특성과 동반 질환, 병용 약물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가령 고혈압 약으로 사용되는 이뇨제의 경우 부종이 있는 환자에게 효과적이지만 당뇨와 통풍을 유발할 수 있다. 최근에 개발된 고혈압 약은 당뇨병 발생을 줄이기도 하고 뇌중풍(뇌졸중)이나 심근경색에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김효수 서울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고혈압 치료의 핵심은, 해당 환자가 가지고 있는 다른 질환에 따라 사용해야 할 약과 피해야 할 약을 가려서 처방하는 것”이라면서 “혈압 강하만 고려해 고혈압 치료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용역 연구 결과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대한고혈압학회 대한심장학회와 함께 이번 고혈압 약 평가 연구보고서를 검토하는 토론회를 19일 열 예정이다.
제약업계는 수십 년간의 신약 개발을 위한 업계의 노력과 과학적 성과를 무시하고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해 정당한 근거 없이 약값 인하에만 주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측은 “약값 인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상당수의 의약품이 비급여화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히 최근 개발된 신약의 경우에는 보험 급여 제외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고 말했다.
○ 환자는 부담이 줄어
환자 입장에서는 약가가 떨어지면 기존보다 약을 싸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론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약사가 정부의 일괄 인하에 반대하면 일부 고가 약은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 이 경우 신약을 먹는 환자들은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기 부담금을 100% 지급해야 한다.
심평원 관계자는 “고지혈증 약값을 재평가했을 때도 대부분 제약사가 결국 약값을 인하해 환자의 부담이 줄었다”며 “고가의 고혈압 약은 계열별로 약가 저항을 최소화해 인하할 예정이어서 환자가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는 고가의 고혈압 약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심평원은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17일까지 학회, 제약사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