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바닥에 떨어진 새끼 황조롱이(천연기념물 323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명색이 맹금류인데 겁을 먹었는지 사람들이 둘러싸도 달아날 생각조차 못했다. 새끼 황조롱이는 작은 상자에 담겼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11일 오전 11시 7분 한국조류보호협회 긴급조류보호구조대에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사 뒤편에 매 같은 새가 떨어져 있어서 A4용지 상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어요.” 김종관 긴급구조단장은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일 가능성이 높으니 바로 가겠다”고 했다.
○ 어린 황조롱이에게 녹록지 않은 도시 환경
낮 12시 10분 김 단장이 도착했다. 황조롱이를 인수하며 잠시 숨을 돌리더니 “장마 직전인 요즘은 새들이 부모의 둥지를 떠나 독립하는 시기라서 추락 사고가 잦다”고 말했다. 서울, 경기 일원에서 발견된 야생조류는 모두 서울 용산구 한국조류보호협회로 전달된다. 17일 기준으로 협회가 거둔 황조롱이만 40마리다.
김 단장은 황조롱이를 살펴봤다. 그는 “털이 깨끗하고 발에 때가 묻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올해 부화한 새끼 같다”면서도 “이미 부모로부터 독립한 개체고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도심지가 아닌 인근 산으로 돌려보내면 혼자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지역에 눌러 사는 텃새인 황조롱이는 부모 자식 사이에도 사냥터를 공유하지 않는다. 그래서 새끼 황조롱이는 어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둥지를 틀고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한다. 문제는 건물이 많은 도시 환경은 어린 황조롱이가 적응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나는 것이 서투른 황조롱이는 종종 건물에 부딪치거나 건물을 타고 도는 강한 바람에 휘말려 추락하기 쉽다. 그래도 스스로 몸을 가누며 떨어지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일부 황조롱이는 건물 유리창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서식지를 침범한 적으로 오인하고 공격한다. 빠르게 날아 머리로 들이받는 것이다. 이 경우 대개 뇌진탕을 일으켜 정신을 잃은 뒤 건물 주변 단단한 바닥에 떨어진다. 날개가 부러지거나 충격이 심하면 죽기도 한다. 김 단장은 “이 황조롱이도 비슷한 이유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 황조롱이는 입원 중… 열악한 환경은 개선 필요
한국조류보호협회 사무실로 들어간 황조롱이는 같은 건물 3, 4층에 자리 잡은 임시 입원실로 옮겨졌다. 새가 담긴 상자나 새장을 쌓아둔 이곳은 무척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맹금류인 황조롱이에게는 그나마 나았다. 같이 들어온 새끼 메추라기처럼 자신의 천적이 푸드덕거리며 울부짖는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남궁대식 밀렵감시단장은 “협회의 입원실이 너무 열악해 보여주기 부끄러울 정도”라며 “새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편안히 회복하려면 서로 떨어진 커다란 새장(방사장)이 최소 5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협회가 보유한 방사장은 2개뿐. 이마저도 입원실에 둘 수 없는 커다란 맹금류를 넣어두고 있다. 회복한 새가 나는 훈련을 하려면 맹금류를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남궁 단장은 “맹금류와 크고 작은 새가 따로 회복할 수 있어야 하고 적응훈련을 하는 방사장도 마련돼야 한다”며 “다친 새들이 입원해 치료받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는 생태교육장과 공원을 결합한 ‘생태공원’이 전국에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전했다.
16일 현재 황조롱이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4일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 다른 황조롱이도 들어와 옆에 놓였다. 김성만 한국조류보호협회장은 “아마도 충정로 동아일보사 인근에 어미 황조롱이 둥지가 있는 것 같다”며 “두 황조롱이가 형제자매 간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황조롱이는 날 수 있는 것만 확인되면 이번 주말 남산에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래도 이 황조롱이는 운이 좋은 편이다. 두 달만 늦게 발견됐다면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한국조류보호협회는 7월 말까지 현재 건물을 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김 협회장은 “협회는 정부 기관이 아니어서 정해진 예산이 없다”며 “기업이나 시민의 후원금과 문화재청의 일부 지원으로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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