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전만 해도 ‘65세 노인’이 앉았다 섰다를 하기 힘들 정도로 퇴행성관절염이 심해져도 침이나 약으로 진통만 달래는 경우가 많았다. ‘노환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본인의 체념과 주위의 시선 때문에 수술을 포기했다. 하지만 관절 수술에서 요즘 65세는 청년에 해당한다. 인공관절 시술법이 도입되면서 최근 ‘수술 가능 나이’가 100세까지 올라갔다.
삼성서울병원에서 관절이나 척추 수술을 받는 환자는 한 달에 500명. 이 중 100∼150명은 70세가 넘은 환자다. 박윤수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80세가 넘은 환자도 수술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으며 90세는 넘어야 ‘나이 때문에 힘드실 수 있겠다’며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다시 확인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인공관절을 시술한 환자 중에는 100세 이상 노인들도 매년 2, 3명씩 꼭 끼어 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의료비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건강보험 재정의 30%에 달했다. 2008년의 노인의료비가 10조 원이 넘었다는 걸 감안하면 그 액수가 얼마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의료기술 발전과 노인들의 적극적 치료 의지가 결합되면서 과거엔 포기했던 질병도 치료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명이 늘어난 데 따른 의료비 증가는 어쩔 수 없지만 평소 적극적 관리로 ‘건강수명’을 늘리면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노년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의료비도 줄여 ‘후대(後代)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얘기다.
○ 노인 1인당 의료비, 80대가 최고
80세 이상 1인당 평균 의료비는 지난해 처음으로 70대 의료비를 추월했다. 특히 85세 이상 노인이 쓰는 1인당 의료비는 2002년보다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본보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02∼2009년 노인 연령별·연도별 현황자료’를 입수해 5년 단위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65세 이상 연령 가운데 1인당 의료비를 가장 많이 쓴 연령대는 80∼84세로 304만395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75∼79세는 292만467원에 그쳤다.
2002년과 비교하면 80세 이상의 의료비 증가를 확연하게 볼 수 있다. 2002년에는 75∼79세의 의료비가 129만8254원으로 가장 많았다. 80∼84세는 115만6871원, 85세 이상은 90만6163원에 불과했다. 65세 이상부터 의료비 지출이 많아지다 80세를 기점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인 것. 하지만 2008년 75∼79세와 80∼84세 노인들이 쓰는 1인당 의료비가 거의 비슷해졌고 지난해에는 역전됐다.
특히 지난 10년간 1인당 노인의료비가 가장 급격히 증가한 연령은 85세 이상 연령대로, 2002년 90만 원에서 지난해 281만2232원으로 3배 이상 뛰었다.
박종연 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박사는 “생애 의료비를 따져보면, 죽기 1년 전 가장 많은 의료비를 쏟아 붓는데 수명이 길어지면서 ‘마지막 1년’이 점점 늦춰지고 있다”며 “앞으로 65세는 노인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수술가능연령 ‘껑충’
이처럼 80대 노인들의 의료비가 급증하는 이유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수술가능연령’이 높아졌기 때문. 10년 전만 해도 골반뼈나 대퇴부를 다친 65세 이상 노인들은 소극적인 치료나 통증관리 정도만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마취와 수술기법의 발달, 재료의 첨단화 덕택에 80세 이상 노인의 수술 여부를 고민하는 시대는 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매년 인공관절 수술을 받는 4만 명의 환자 중 70세 이상이 45%를 넘는다.
고난도 수술에 도전하는 노인도 늘어났다. 최근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박승정 병원장과 심장내과 김영학 교수팀은 혈관확장용 스텐트(그물망)를 이용해 중증 심장 질환인 대동맥판막협착증 고령 환자 3명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모두 75세 이상이었다. 서울아산병원은 “기존의 절개술보다 간편하고 후유증도 적어 노인들도 적극적으로 수술을 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노인도 건강관리 적극적 첨단의학 덕에 수술 쉬워져… 치매-우울증도 ‘치료할 병’
○ 전립샘, 치매, 우울증도 적극 치료
단순히 의료 기술의 발달만으로 의료비 증가를 설명할 순 없다. 노인들의 욕구 자체가 달라졌다. 박종연 박사는 “노환으로 치부해 방치하던 치매, 우울증도 지금은 적극적으로 치료한다”며 “노년을 그저 죽음을 앞둔 과정으로 보지 않고 활기차게 보내야 하는 시기라는 쪽으로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노인의료비 중 가장 급증한 3가지 항목은 비뇨기과 질환, 치매, 우울증이었다. 모두 노화가 진행될수록 유병률이 커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 것은 치매다. 65세 이상 치매 환자의 진료비는 2002년 334억5300만 원에서 지난해 4524억9900만 원으로 7년 새 12배 넘게 증가했다. 치매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신약과 진단법이 개발되면서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고 있는 것이다. 김희진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를 예전에는 ‘망령들었다’고 생각해 환자를 집에 숨겨두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치매를 관리 가능한 질환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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