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대전 성덕중 2학년 김유림 양이 ‘스트로보스코프 원리를 이용한 고속 고감도 조율기’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국무총리상은 ‘피토관 실험 키트’를 발명한 경북 경산과학고 2학년 이준엽 군이 차지했다.
이 대회는 국내 최고 권위의 청소년발명대회로 동아일보사와 교육과학기술부가 공동 주최하고 국립중앙과학관이 주관하며 한국야쿠르트가 협찬한다. 국립중앙과학관은 올해 대회에서는 전국 초중고교생들이 2만4133점을 출품해 열띤 경합을 벌인 끝에 297명의 수상자가 나왔다고 22일 발표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명수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은 “발명품에 대한 학생들의 애착과 열의가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대통령상은 과학 원리를 실생활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국무총리상은 어려운 유체역학 원리를 독창적인 실험 키트로 쉽게 설계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은우 국립중앙과학관장은 “심사위원이 출품자와 일대일로 인터뷰하며 발명품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을 채택해 참가자들에게서 호응을 얻었다”고 밝혔다.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 수상자에게는 상금과 함께 유럽 등에서 해외 과학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연수 기회가 주어진다. 수상작 297점은 다음 달 20일까지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 특별전시관에서 전시되며, 시상식은 다음 달 20일 KAIST에서 열린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섬광 촬영 장치 이용… 바이올린 초고속 조율▼ ●대통령상 김유림 양(대전 성덕중 2학년)
김유림 양이 바이올린을 조율하며 자신의 발명품인 ‘스트로보스코프 원리를 이용한 고속 고감도 조율기’를 시연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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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어요. 연주하기 전 바이올린 네 줄의 음부터 정확히 조율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바이올린 조율기를 쓸 때마다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바이올린 줄을 튕기면 한참 기다려야 조율기에 음의 높낮이가 표시돼요. 게다가 미세한 음정 차이는 감지해 내지도 못해요.”
대전 성덕중 2학년 김유림 양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느낀 불편함을 ‘스트로보스코프 원리’로 해결한 발명품을 출품해 대통령상을 받았다. 스트로보스코프는 주기적으로 깜박이는 빛을 쬐여, 회전하는 물체를 마치 정지한 상태처럼 관측하는 섬광 촬영 장치다.
김 양이 개발한 바이올린 조율기는 레코드판처럼 생긴 동그란 회전판 위로 발광다이오드(LED)가 달려 있다. 가령 ‘라’ 음을 맞추기 위해 바이올린 활로 현을 켜면 LED가 반짝이면서 회전판이 돌아간다. LED의 진동수와 회전판의 회전 진동수가 ‘라’의 진동수(440Hz)와 일치하면 회전판 위에 선이 하나로 나타난다. 동그란 회전판 위 LED 설치 바이올린 활로 현을 켤 때 LED-회전판 진동수 맞춰
선이 회전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뒤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면 음이 ‘라’보다 높거나 낮다는 것이다. 청각장애인도 눈으로 보면서 바이올린을 조율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 양이 발명품에 스트로보스코프 원리를 적용한 계기는 바로 MP3플레이어 때문. 그는 MP3플레이어 화면에 불이 깜박이는 이유가 궁금해 조사하다가 스트로보스코프 원리에까지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작년에는 바이올린의 연주 기법인 비브라토(떨림)에 이 원리를 적용해 과학전람회에서 특상을 받았다. 김 양은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이면서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이 이상형”이라며 “앞으로 과학과 음악을 융합한 연구를 하는 ‘뮤지컬 사이언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장래 희망을 밝혔다.
김 양을 지도한 이종국 성덕중 교사는 “과학과 음악 모두에 흥미를 가진 학생”이라며 “아이디어를 발명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교사인 저 자신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물높이 측정해 풍속 계산… 실험 키트 첫 개발▼
●국무총리상 이준엽 군(경북 경산과학고 2학년)
이준엽 군이 자신이 발명한 ‘피토관 실험 키트’를 소개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물리 수업을 들을 땐 분명히 풍속을 이해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문제를 풀려고 하니 잘 모르겠더라고요. 유체역학 원리를 눈으로만 익혔지 손으로 직접 실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경북 경산과학고 2학년 이준엽 군은 자칭 ‘물리 마니아’다. 교내 물리동아리 안에서도 ‘한 물리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작년 ‘물리 I’ 수업 뒤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문제를 풀며 풍속을 복습하는데 도통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자료를 찾다 보니 비행기 동체에 붙여 항공기의 속도를 측정하는 ‘피토관’이 눈에 들어왔다. 피토관을 이용해 풍속을 측정하는 실험 키트를 만들어 보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 군은 길쭉한 유리관에 U자 모양의 피토관 3개를 붙였다. 유리관 한쪽 끝에는 소형 팬을 달아 스위치를 올리면 관에 공기가 흐르도록 했다. 공기가 바람 역할을 하는 셈이다. 피토관 안에는 물을 채워 압력 차가 생길 때 공기의 흐름을 물의 높이 변화로 알 수 있도록 했다. 피토관 3개 중 하나는 굵게 만들어 대조군으로 삼았다. 이 군은 “물의 높이를 측정해 풍속을 직접 계산할 수 있도록 설계한 실험 키트가 개발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교내 물리동아리 회원들도 아이디어가 좋고 풍속의 개념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는 평을 내놨다”고 말했다.
이 군을 지도한 경산과학고 이승연 교사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준엽이의 탐구력이 많이 신장했다”면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입장에서도 유용한 실험 키트”라고 말했다.
“과학경시대회에 나간 경험은 있지만 발명품을 출품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김 군은 첫 도전에서 좋은 성과를 낸 만큼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새로운 발명품에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5월 타계한 미국의 과학 저술가 마틴 가드너처럼 과학 대중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꿈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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