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는 올해 여름도 어김없이 남해안을 찾았다. 남쪽에서 올라온 해파리는 남해와 동해의 어장과 해수욕장을 덮쳤다. 선봉대는 보름달물해파리다. 작지만 떼로 몰려다니는 이 해파리는 고기잡이용 그물에 엉겨 붙어 그물을 망가뜨린다. 그래도 보름달물해파리는 노무라입깃해파리에 비하면 양반이다. 노무라입깃해파리는 독성이 있어 양식장의 어패류를 집단으로 폐사시키거나 해수욕장의 피서객을 쏘는 등 피해를 준다. 이 해파리는 이르면 2주 뒤부터 남해에 대량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해파리는 천적인 쥐치나 말쥐치를 이용하거나 그물로 건져내 제거하고 있다. 쥐치와 말쥐치는 해파리를 뜯어 먹는다. 문제는 쥐치와 말쥐치가 가장 선호하는 먹이가 해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서영상 수산해양종합정보과장은 “해파리를 다른 먹이와 함께 넣으면 말쥐치는 다른 먹이를 먼저 먹는다”며 “시간이 지나면 말쥐치가 뿔뿔이 흩어지는 것도 단점”이라고 말했다. 노무라입깃해파리를 제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어선이 그물의 양쪽을 잡고 노무라입깃해파리 떼 주변을 지나가면 외피가 부드러운 해파리는 그물에 걸려 조직이 찢어지며 죽는다.
○ 로봇, 편대유영하며 해파리 퇴치
그러나 3년 뒤에는 로봇이 이런 일을 대신할 것으로 보인다. KAIST 건설및환경공학과 명현 교수는 이달 초 경기 과천시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개최된 ‘제5회 융합과학 워크숍’에서 스스로 해파리를 찾아 퇴치하는 로봇을 선보였다. 이 워크숍은 수년 내 실현될 융합기술을 선보이는 장(場)이다.
명 교수가 개발 중인 것은 2∼4대가 편대 유영을 하며 노무라입깃해파리 떼를 제거하는 일종의 ‘군집로봇’이다. 로봇이 해파리를 퇴치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부유식 로봇 2대가 3m 깊이의 그물 양쪽을 잡고 해파리 떼가 모인 곳을 지나간다. 외피가 약한 해파리는 그물에 스치기만 해도 잘게 쪼개지며 죽는다.
명 교수는 “로봇 2대로도 해파리를 퇴치할 수 있지만 한번에 많은 양을 없애려면 로봇이 여러 대 필요하다”며 “해파리는 물의 흐름을 따라 떠다니기 때문에 그물을 피해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1차 목표는 로봇 4대가 협업하는 시스템이지만 차차 수를 늘려갈 계획이다.
2~4대 떠다니며 그물로 포위해 퇴치, 위치정보 알려주는 비행선과 협공
협동하는 해파리 퇴치 로봇은 같은 기술을 지닌 육상 로봇에서 발전했다. 명 교수는 육상에서 로봇들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장착된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자신의 위치와 장애물을 인식하는 시스템을 구현했다. 각각의 로봇이 인식한 정보를 고주파통신으로 중앙컴퓨터에 보내면 중앙컴퓨터가 로봇끼리 협업하도록 동작을 지시한다.
바다에서는 중앙컴퓨터를 탑재한 모선(母船)과 로봇이 함께 돌아다니며 해파리를 퇴치하게 된다. 해파리가 북상하기 시작하는 남해 먼 바다로 모선이 나간 뒤 로봇을 출동시켜 해파리를 추적해 제거하는 방식이다. 로봇이 해파리 떼를 발견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퇴치할 수 있는 경로로 흩어지며 그물을 펼쳐 작업한다. 명 교수는 “로봇은 해파리처럼 바다 위에 떠서 움직이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량이 적어 한번 출동하면 장시간 작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로봇은 내비게이션과 자체적으로 가진 센서를 이용해 해파리나 장애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개발된 상태다. 어선이 물고기 떼를 찾을 때 사용하는 어군탐지기처럼 주변에 초음파를 쏘아 해파리를 찾는다. 하지만 다른 로봇이나 중앙컴퓨터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긴밀히 협력해 움직이는 건 아직 무리다. 명 교수는 “국립수산과학원과 함께 육상의 로봇을 해양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며 “3년 뒤에는 실제 바다에서 시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하늘과 바다에서 해파리 협공할 듯
명 교수가 국립수산과학원과 협력해 해파리 퇴치 로봇을 개발하게 되면 해파리 제거 작전은 하늘과 바다에서 입체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립수산과학원은 모선에 무인비행선이나 무인비행기를 탑재하고 먼 바다로 나가 해파리 떼나 적조를 감시하고 추적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하늘에서 해파리 떼의 이동경로를 파악하면 해파리가 대량으로 한반도에 도달하기 전 로봇을 보내 퇴치할 수 있는 셈이다.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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