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완화제를 드시고 있네요. 해열진통제를 함께 드시면 출혈성 위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김승준 연세마취통증의학과 원장(제주 제주시 이도1동)이 감기몸살을 호소하는 박은석 씨(33)의 처방전을 의약품처방조제시스템인 의약품사용평가(DUR·Drug utilization review)에 접속해 입력했다. 2, 3초가 지났을까. ‘투약 이전 반드시 환자에게 적절한 안내 조치를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곧바로 뜬다. 박 씨가 복용 중인 통증완화제(케토롤락트로메타민 성분)를 해열진통제(아세트아미노펜 성분)와 함께 복용할 경우 위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감기약을 모두 복용한 뒤 통증완화제를 복용하거나 해열진통제를 제외하고 감기약을 복용할 것을 권했다.》 ■ DUR 시범 사업 제주도 현장 가보니…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제주도에서 DUR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DUR란 의사가 의약품을 처방하거나 약사가 조제할 때 중복 처방된 약, 함께 사용하지 못하는 약, 12세 미만이 못 먹는 약, 임산부가 피해야 하는 약이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줘 부적절한 약 복용을 걸러내는 시스템이다. 제주대병원을 비롯해 병원의 33%, 의원의 84%, 약국의 97%가 참여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14일 제주도 DUR 시범사업 현장을 찾아 직접 진료를 받고 의약품을 구매해 봤다.
병의원을 돌며 같은 약을 처방받는 의료쇼핑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같이 사용하지 못하는 385성분(약 2300개), 연령 제한 103성분(약 1010개), 임산부 제한 314성분(약 3950개)을 걸러낸다. 제주도에서 현재 금기 약물이 걸러지는 비율은 전체 처방의 3∼5%. 이를 전국으로 확대할 경우 연간 약제비 1300억∼1800억 원을 절감할 수 있다. 오남용으로 인한 약물부작용을 예방하는 효과까지 포함하면 사회경제적 비용절감 효과는 더욱 크다.
환자들의 호응도 높다. 현장 점검차 동행한 박 씨는 “그동안 여러 약을 한꺼번에 복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남용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이의경 숙명여대 약학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6개월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진행한 DUR 시범사업을 접한 환자들은 한결같이 ‘DUR 도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윤창겸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미국에서는 민간 보험회사 가입자만 대상으로, 영국에서는 의사가 환자가 복용하는 약을 가져오도록 해서 일일이 확인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며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DUR 사업은 한국이 최초”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내년에 예산 70억 원을 투자해 DUR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DUR 사업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대목도 눈에 띄었다.
김광식 제주대병원 진료처장은 “현재 환자 정보 20∼25%만 심평원으로 전송되는 상태”라며 “참여 의료진을 5명에서 30명까지 늘리려고 하지만 시스템 오류가 우려돼 보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환자가 많은 대학병원에서는 DUR를 환자에게 설명하려면 진료시간이 길어진다는 점도 부담스러워했다.
또 병의원과 달리 일반의약품을 취급하는 약국에서는 DUR 참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박 씨는 의원에서는 해열진통제 처방을 받지 못했지만 약국에서는 타이레놀을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원래는 약국에서도 환자에게 신분증을 확인해 의약품처방조제시스템에 접속해야 한다. 하지만 방문한 약국 5곳 중 1곳도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H약국 약사는 “안면 있는 동네 주민들인데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기 번거롭다”며 “매출과 직결되는데 강제성 없는 시범사업에 왜 참여하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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