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247-○○○○’, 햇수로 12년 동안 쓴 번호였다. 대학 때 처음 휴대전화를 산 뒤 새로 알게 되는 모든 사람에게 이 번호를 알려줬다. 명함이란 것도 없던 시절부터 늘 남에게 나를 소개해준 바로 그 번호였다. 하지만 보름 전 바꿨다. ‘010-3247’로 시작하는 낯선 번호, 1년 동안은 무료로 옛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연결해 준다지만 어쩐지 아쉽다.
한 정보기술(IT) 업체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한기정 씨(33) 얘기다. 한 씨는 최근 회사가 삼성전자의 인기 스마트폰 ‘갤럭시S’를 나눠 준다는 말에 한참 고민하다 옛 번호를 버리고 새 스마트폰을 택했다. 그리고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자신처럼 ‘016’ 번호를 쓰는 사람도 스마트폰과 같은 3세대(3G) 휴대전화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6일 ‘011, 016, 017, 018, 019’ 등 이른바 ‘01×’ 국번을 사용하는 2세대(2G) 통신서비스 가입자가 3G 휴대전화로 전화기를 바꿀 때도 기존 국번을 3년 동안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방안(①)을 다음 주 전체회의에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체회의는 이와 함께 모든 국번을 010으로 강제 통합하는 방안(②)과 010 강제 통합은 하되 발신자번호표시창에 01× 국번으로 표시해주고 상대가 01×로 건 번호도 자동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허용하는 방안(③) 등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회의 안건으로 올릴 이 세 가지 방안 가운데 ②안은 01× 가입자들의 항의가 예상되고, ③안은 한 씨처럼 최근 스마트폰 열풍 때문에 01× 번호를 포기한 소비자들이 ‘역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할 공산이 커 통과될 가능성이 낮다.
현재로선 ①안이 통과될 확률이 높다. 이 방안은 01× 고객이 앞으로 3G 방식의 휴대전화(스마트폰)를 살 때 01×와 010의 번호를 2개 부여받는다. 어떤 번호를 선택하든 고객 맘이다. 01×를 그대로 써도 된다. 그 대신 3년 뒤에는 01× 번호는 자동으로 폐기시키고 010 번호만 쓰게 하는 약관을 만들어 사용자 동의를 받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부가 당초 발표한 ‘강제통합’ 원칙을 저버렸다는 평가부터 소비자와 통신업계의 의견을 고려하고 원칙을 지킨 ‘중용’의 방식이라는 방통위 자체 평가까지 다양한 의견이 엇갈린다. 방통위는 옛 정보통신부 시절인 2003년 국가의 통신 자원에 해당하는 휴대전화 국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며 3G 통신장비부터 010 국번만을 쓰게 하고 2004년부터 이를 의무화했다. 이때 010 사용률이 80%를 넘으면 국번을 010으로 강제 통합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며 지난달 말까지 010 가입자는 83%를 넘어섰다.
통신업계에서는 2007년 사실상 2G 통신망을 갖고도 3G 통신망 사업자인 SK텔레콤, KT와 동일하게 010 번호 사용에 동의했던 LG U+(유플러스)가 반발하고 있다. LG U+ 관계자는 “규제당국이 010 가입자가 80%를 넘으면 강제통합을 실시할 것으로 생각하고 정부 정책에 맞춰 가입자들을 010으로 유도해 일을 진행했는데 ‘3년 유예’ 식으로 정책 실행을 늦추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한편 아직 010으로 번호를 바꾸지 않은 17%의 01× 국번 가입자들의 궁금증도 크다. ①안이 통과되면 과연 언제부터 제도가 시행돼 자신의 번호를 유지하면서 3G를 이용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3년 유예’안이 통과되더라도 이 제도가 도입되려면 최소 3∼4개월, 길게는 통신사가 2G 서비스를 종료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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