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취중진단]“술만 마시면 기억이 안나!”… 당신의 뇌에선 무슨 일이?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2일 03시 00분


2005년 11월 경남 창원의 한 모텔에서 50대 일본인 사업가가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 설치돼 있던 CCTV 녹화 테이프를 토대로 사건 발생 12시간 만에 용의자를 긴급 체포했다. 범인은 뜻밖에도 30대의 평범한 회사원. 하지만 그는 지난밤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술을 마신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집에는 언제 어떻게 돌아왔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아 당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필름이 끊기는 이른바 ‘블랙아웃’ 현상을 경험한 것. 블랙아웃은 술을 마신 뒤 나타나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말한다.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은 기억 중추인 해마와 측두엽. 특히 해마는 정보가 기억으로 저장되기 전에 임시로 머무는 장소다. 여기서 선발된 정보만이 장기기억을 관장하는 측두엽에 새겨진다.

술을 마신 뒤 블랙아웃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체내에 흡수된 알코올과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만들어진 아세트알데히드가 해마의 신경세포 재생을 억제해 기억의 저장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개인차가 있지만 혈중 알코올 농도 0.15% 정도부터 기억력 장애가 나타난다. 술이 깨면 정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대부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는 필름 끊김 현상이 반복될수록 뇌는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는 점이다.

뇌의 기능이 떨어지면 알코올 조절능력이 저하되고, 이에 따라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시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뇌의 손상정도가 심해져 기억력, 집중력 등의 인지기능이 떨어진다. 판단능력이 떨어져 사고를 당할 위험도 커진다.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영향을 받아 화를 잘 내고 폭력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살인, 성폭행 등 강력사건 3건 중 1건이 술로 인한 범죄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등과 같은 정신적인 문제도 나타난다. 최악의 경우 알코올성 치매 현상을 겪을 수도 있다. 알코올성 치매는 알코올의존증 말기 환자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증상.

한번 손상된 뇌세포는 재생되지 않는다. 따라서 알코올로 인한 뇌 손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술을 마시는 횟수와 양을 줄여야 한다. 블랙아웃을 경험하는 등 이미 뇌 손상이 진행되는 경우는 반드시 술을 끊어야 한다. 특히 장기간에 걸쳐 블랙아웃 현상이 반복되고 이로 인해 사회활동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알코올의존증이 의심되므로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알코올중독치료전문 진병원 양재진 원장

※ 본 지면의 기사는 의료전문 김선욱 변호사의 감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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