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촬영된 제2남극기지인 장보고기지 건설예정지. 정확한 위치는 ‘남극 테라노바 만 케이프 뫼비우스, 남위 74도, 동경 164도’다. 오른쪽에 보이는 둥근 시설물은 당시 건설된 베이스캠프로 남극의 혹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가운데 솟은 안테나는 기상을 측정하는 장비고 멀리 바다와 접한 곳에는 부두가 들어설 예정이다. 사진 제공 김영석 연구위원
남극은 지금 여름이다. 제2남극기지인 장보고기지가 들어설 테라노바 만은 평균온도가 영하 5도 이상으로 한파가 닥친 한국보다 따뜻하다. 낮에는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 얼어 있던 땅이 녹으며 흙과 물이 섞여 질척해진다. 이런 땅은 기지 건설에 최악이다.
겨울에도 안전하지는 않다. 초속 40m 정도의 바람이 시시때때로 분다. 어지간한 태풍 수준이다. 지난해 장보고기지 건설 예정지에 남겨둔 조사단의 베이스캠프는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이곳에 지어질 장보고기지는 사시사철 변하는 극한 환경에 견뎌야 한다. 그래서 실제 기지 건설에 쓰이는 설계도(실시설계)에는 정밀하게 관측된 남극의 특성이 반영된다. 이를 위해 장보고기지 건설 정밀조사단은 19일 남극으로 출국한다. 이들에게 주어진 기간은 불과 13일. 그동안 지반조사, 측량, 풍속과 적설량 조사를 모두 마쳐야 한다. ○ 땅속 5m 깊이에 기반암 있으면 건설 난항
조사단이 탄성파를 이용해 지면의 무른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 이곳의 땅은 여름에 녹아 질척해 진다. 사진 제공 김영석 연구위원 “지난해 남극에서 육안 조사와 물리탐사 같은 간접적 기법으로 지반을 조사했습니다. 1∼2m 깊이에 단단한 기반암이 있을 것으로 판단됐어요. 이번에 남극에 가면 땅을 직접 뚫어 어디에 기반암이 있는지 정확히 찾을 계획입니다. 최대 20m까지 시추가 가능한 장비는 이미 아라온호에 실려 테라노바 만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김영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지반연구실 연구위원은 출국을 일주일 앞둔 12일 “장보고기지 건설이 얼마나 어려워질지는 기반암의 깊이가 결정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장보고기지의 건설을 맡은 ‘극지인프라 구축사업’의 연구책임자다.
남극의 땅은 대부분 얼어 있지만 표층은 계절에 따라 얼었다 녹는 것을 반복한다. 건설 당시 단단하다고 생각한 땅에 건물을 올려도 날씨가 따뜻해져 땅이 녹으면 건물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울어진다. 땅에 튼튼한 말뚝을 박아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장보고기지는 더더욱 말뚝의 끝이 단단한 기반암에 닿아 있어야 한다. 현재 기반암은 땅속 1∼2m 부근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곳이 얼어붙은 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땅을 뚫어 확인해야만 한다.
김 연구위원은 “기반암이 1∼2m 깊이에 있다면 그 위의 흙을 전부 걷어내고 자갈과 유리로 이뤄진 ‘얼지 않는 흙’을 덮은 뒤 기지를 건설하면 된다”면서도 “기반암이 4∼5m 깊이에 있다면 길고 큰 말뚝을 박아야 하기 때문에 공사 기간이 길어져 기한 내 기지 건설을 완료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2014년까지 건설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다. ○ 가상 기지서 생활하며 풍속-추위 자료 모아
건설예정지의 지반 조사에 사용된 물리탐사장비(GPR). 기지를 안전하게 받쳐 줄 기반암은 1∼2m 깊이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연구위원을 비롯한 1차 조사단은 항공편으로 뉴질랜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접착제와 우레탄, 경화제 등을 대량 구입할 예정이다. 3개 동으로 이뤄진 장보고기지본관을 모사한 컨테이너 실험동을 조립하고 설치하기 위해서다. 실험동은 가상 기지로 내부에는 지진계에 사용되는 가속도 계측기와 온도계 등이 설치된다. 조사단은 이곳에서 13일간 생활하며 단열재가 추위를 얼마나 막아주는지, 남극의 강한 바람이 건물을 얼마나 기울게 하는지를 직접 관측하며 체험한다. 실험동은 조사단이 나온 뒤에도 기지 건설 예정지에 남아 겨울철 바람의 세기와 30km 떨어진 ‘멜버른’ 화산의 활동을 감지해 자료를 축적한다. 이 자료는 1년 뒤 기지를 건설할 때 활용된다.
이 외에도 조사단은 예정지를 정밀 측량해 축척 1:500 정도로 정확한 지도를 제작하고 남극조약협의 당사국회의에 제출할 ‘포괄적 환경영향평가서(CEE)’를 완성할 계획이다. 김 연구위원은 “이번 조사에서 남극에 대한 자료를 최대한 모아 우리나라의 극한지 건설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며 “향후 남극 대륙에 진출하려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국가에 기술을 수출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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