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집단매몰지 침출수, 상수원 오염 땐 대재앙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9일 03시 00분


AI 까지 엎친데 덮친격… 전국 4251곳에 묻어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대량 매몰 처분된 가축들로 인해 심각한 환경 재앙이 우려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전국을 휩쓴 구제역과 올 초부터 시작된 조류인플루엔자(AI)로 최근까지 전국 4251곳에서 소 돼지 닭 등 가축 857만 5900여 마리가 매몰됐다. 전문가들은 가축 사체에서 나온 피와 부패 물질 등으로 인근 지하수나 하천, 토양 등이 오염될 경우 심각한 2차 환경오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침출수 흘러나갈 저류조 미설치 많아”

2차 환경오염은 땅속에 매몰된 구제역 감염 가축이 부패되면서 시작된다. 구제역에 감염된 소나 돼지, AI에 감염된 닭 등을 땅에 묻으면 10일 이내에 사체가 썩고 이 과정에서 가축의 사체로부터 핏물과 썩은 물이 나온다. 이 썩은 물은 매몰지 속으로 스며든 후 인근 토양과 지하수 등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밟는 것이 일반적이다.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이번 구제역 확산 이후 지난해 말 돼지 3000여 마리를 묻은 경기 파주시 광탄면 매몰지 주변에서는 침출수가 새어나와 인근 도랑 등이 붉게 변했다. 또 돼지 2000여 마리를 매몰한 경북 영천시 고경면 매몰지에서도 도로와 도랑으로 침출수가 나와 민원이 제기되는 등 매몰지 인근의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물론 가축 매몰에는 지켜야 할 기준이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등의 매뉴얼에 따르면 2차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가축 도살처분 시 구덩이를 4, 5m 깊이로 판 후 비닐로 매몰지 전체를 덮어야 한다. 또 가축의 핏물이나 썩은 물이 땅에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닥에 톱밥이나 석회를 뿌리거나 부직포를 깔아야 한다. 매몰지 속에는 파이프를 심고 사체에서 나오는 유독가스를 밖으로 배출하며 매몰 구덩이보다 낮은 곳에 저류조를 설치해 침출수가 빠져나가게 해야 한다.

하지만 구제역과 AI 발생 후 수백만 마리의 가축을 짧은 시간에 매몰처분하다 보니 일선 현장에서 이런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환경부 정은해 토양지하수과장은 “2곳에 묻을 가축 사체를 1곳에 다 묻거나 침출수가 흘러들어갈 저류조를 설치하지 않은 등 매뉴얼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매몰처분 매뉴얼을 정확히 지켰을 경우라도 △생매장된 가축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바닥에 깔린 비닐을 훼손할 경우 △산비탈, 배수로 등 매립이 적절치 않은 곳에 매몰해 우기(雨期)에 산비탈 등이 유실, 붕괴되는 경우에도 침출수가 주변으로 확산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 대장균-장 바이러스 등 유독물질 포함

환경부와 행정안전부, 경북도가 합동으로 지난달 24∼28일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경북도내의 매몰지 89곳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68%(61곳)에서 유실과 붕괴 등에 의한 2차 오염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경기도가 5, 6일 도내 매몰지 627곳을 조사한 결과 가스배출관 설치 부적절(14곳), 성토 부족(35곳), 매몰지 관리카드 미비치(109곳) 등 관리가 부실했다.

매몰지가 하천이나 강변 등 수자원 주변에 설치된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한강 등 상수원 상류지역 50여 곳은 2차 환경오염 위험지역으로 판명돼 10일부터 환경부, 농식품부, 행안부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의 특별 조사를 받는다.

매몰지에서 새어 나온 침출수가 식수로 사용하는 인근 지하수와 하천으로 흘러들 경우 인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침투수는 쉽게 말해 쓰레기에서 나오는 썩은 물과 같아서 대장균, 장 바이러스 등 미생물과 질산성 질소, 암모니아성 질소 등 유독화학물질이 포함돼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02년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 용인시 백암면 일대 농가 11곳 중 6곳의 지하수에서 일반 세균이 기준치보다 4배 이상 검출됐다. 또 2009년 전국 AI 매몰지 15곳 중 8곳에서 침출수가 발견됐으며 인근 지하수의 80%가 오염돼 먹는 물 수질 기준을 초과했다.

이 때문에 환경부는 매몰지 반경 300m 이내 지하수 추출 시설 3000여 곳과 상수원 상류 주변 지하수 시설 1000여 곳의 오염 여부도 조사하기로 했다. 이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구제역 확산 방지 위주의 방역으로 2차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며 “방역대책 전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약품으로 사체부피 축소, 미생물 활용 분해방법도

■ 2차오염 막으려면

구제역 가축 매몰지 주변의 2차 환경오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방역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존의 구제역 가축을 매몰하는 방식으로는 환경오염을 피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은 8일 “구제역 의심 가축을 그대로 매장하는 방식이 아닌 비(非)매몰하는 새로운 도살 방법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과학원은 우선 구제역 가축의 사체의 부피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기로 했다. 유지영 환경과학원 토양지하수연구팀 연구사는 “강력한 산이나 알칼리 등 화학약품을 구제역 소에 뿌리거나 가축 사체를 고압으로 압축하는 방식 등으로 최대한 부피를 줄이면 2차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지난해부터 미생물을 이용해 구제역 가축 사체를 최대한 빨리 분해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땅에 묻되 신속하게 가축의 사체를 부패시킬 수 있는 혐기성세균을 증식하는 방법이다. 또 구제역 가축 사체를 바이오 디젤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되고 있다. 구제역 가축 사체에서 기름을 짜내 공업용 기름으로 사용하겠다는 것.

이 밖에 매몰된 구제역 의심 가축의 구제역 바이러스 양성 여부를 파악한 후 구제역에 감염되지 않았을 경우 배출관을 통해 전용 하수처리장으로 침출수를 보내는 시스템도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동식 소각시설도 개발 중이다. 현재는 ‘렌더링(rendering)’으로 불리는 소각 방식이 대안으로 개발된 상태. 이 방식은 사체를 고온, 고압의 스팀으로 멸균처리한 후 20% 정도 남은 사체 잔재물을 퇴비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지만 기계의 비싼 가격(대당 3억 원)과 처리 용량 부족으로 아직은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 선진국에선…

英, 매립-열처리정제-소각 등 다양
日, 농가 근처 아닌 전용매립장 이동


선진국은 단순히 구제역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것뿐 아니라 2차 환경오염 예방은 물론이고 공중위생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한 방역시스템을 갖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매몰보다는 다양한 도살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2001년 구제역으로 가축 620만 마리를 도살한 영국은 이후 방역제도를 대폭 개선했다. 영국은 구제역 감염 가축의 위험도에 따라 도살처분 방식을 달리 적용한다. 구제역 바이러스 확산 위험성이 큰 가축은 전용 이송차량으로 수송해 위생매립장에 묻는다. 위험도가 중간인 가축은 열처리정제 방식을 이용해 고열로 바이러스를 소멸시킨 후 처리한다. 위험도가 낮은 구제역 의심 가축은 일반소각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도 구제역 가축 처분 방법에 우선순위(렌더링, 매립지 처분, 현지 퇴비화, 현지 매몰 순)를 정해 효율성을 강화했다.

지난해 쇠고기 유명 산지인 미야자키(宮崎) 현에서 구제역이 창궐해 소 등 28만9000마리를 도살처분한 일본도 국내처럼 구제역 발생 농가 근처에 가축을 묻는 것이 아니라 전용 매립장에 묻는 방역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구제역 가축을 전용 매립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특수 구제역 가축 전용 이송차량’을 개발해 활용하기도 한다. 이 차는 구제역에 감염된 소를 실은 후 밀봉하고 소독한 뒤 전용 위생매립장까지 이동한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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