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예전 스마트폰은 지금처럼 애플을 베끼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갤럭시’ 시리즈에서 특허권, 트레이드 드레스, 상표권 등을 전방위로 베끼는 방법을 택했다. 비열한 모방이다.”(애플의 소장 중에서)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에서 국지전 양상을 보여 왔던 ‘특허 전쟁’이 급기야 애플과 삼성전자의 ‘빅 매치’로 번졌다.
이번 소송이 관심을 끄는 것은 두 회사가 사업 파트너이자 최대 경쟁사인 묘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삼성전자로부터 부품을 구입하는 고객이지만 스마트 기기 시장에서는 치열한 경쟁자다. 삼성전자는 이날 “사업은 사업이고, 소송은 소송”이라며 “3세대 이동통신기술 특허 등 다수의 통신표준 특허를 침해한 애플을 상대로 맞소송할 것”이라고 밝혔다. ○ 애플, “삼성전자, 전방위로 베꼈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애플의 소장은 ‘삼성전자(갤럭시S, 갤럭시탭)가 애플(아이폰, 아이패드)을 베껴도 너무 베낀다’는 기조를 곳곳에 담고 있다.
애플이 구체적으로 제시한 표절 사례는 △사각형 갤럭시폰의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외관 △은빛 테두리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아이콘 디자인 등이다. 제품 포장에 대해서도 ‘직사각형 박스 위에 은빛 글씨와 커다란 제품 사진을 넣은 디자인’이 애플 것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애플이 이처럼 상품 외장(外裝)을 뜻하는 ‘트레이드 드레스’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그동안 노키아, 모토로라, HTC 등과 특허소송을 벌이며 기술적 측면을 문제 삼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 미국 변호사는 “미국 법원이 정보기술(IT) 법률시장에서 최근 웹 디자인 등 트레이드 드레스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애플은 소장의 한 페이지에서 두 회사의 아이콘을 비교해 보여주며 디자인의 유사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애플 측은 “삼성전자가 노골적으로 우리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더는 용인할 수 없다”고 소송의 배경을 밝혔다. ○위기감 느낀 애플, 소송 실효성은 의문
이번 소송에 대해 전자업계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부품 조달에 어려움이 생겨 ‘아이폰5’ 출시 지연설에 시달리는 애플이 다음 주 삼성전자의 ‘갤럭시S 2’ 출시를 앞두고 견제에 들어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모토로라 등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진영의 시장점유율이 올해 38.5%(애플의 iOS는 19.4%)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애플을 압박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IT 전문지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애플이 삼성전자를 제소한 속내는 구글이 삼성전자 같은 제조사에 안드로이드폰 검색광고 수익의 일부를 나눠주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구글이 제조사와 수익을 나누면서까지 세력을 넓히는 걸 막기 위해 제조사에 “안드로이드를 선택하면 소송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려 한다는 것이다.
애플은 IT업계의 ‘특허 싸움꾼’으로 통하지만 소송을 가장 많이 당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2009년 이후 노키아와 모토로라, 코닥으로부터 특허 침해 소송을 당했다. 지난해에는 ‘특허괴물’(특허관리 전문기업)에만 20건의 소송을 당했다. 박찬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제조를 하지 않는 특허괴물과 달리 제조사끼리의 특허 분쟁은 크로스라이선스(기술협약)나 합의로 마치는 게 대부분이라 애플과 삼성전자 간에도 ‘끝장내기식’ 싸움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한편 시장조사 전문업체 ‘아이서플라이’가 지난해 6월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애플 ‘아이폰4’의 원가는 187.51달러였고 이 중 삼성전자 부품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57.35달러어치여서 전체 원가의 약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은 올해 삼성전자로부터 78억 달러(약 8조6000억 원) 상당의 부품을 사들여 60억 달러 안팎을 구매할 일본의 소니를 제치고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 ::
색, 크기, 모양 등 제품의 고유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 기능보다는 외장(外裝)에 비중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나 보호방안이 없지만 미국에서는 1989년 개정된 상표법 이후 주요 지적재산권의 하나로 보호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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