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맨틀 시추… 해저지진 비밀 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2일 03시 00분


한국인 이영민 연구원 참여 심해저 시추선 ‘지구호’ 연구 어디까지…

지구호가 3∼4km 깊이 해저에서 채취한 원기둥 형태의 시료. 시료는 지구호에 올라오자마자 세밀히 분석된다. 이영민 씨 제공
지구호가 3∼4km 깊이 해저에서 채취한 원기둥 형태의 시료. 시료는 지구호에 올라오자마자 세밀히 분석된다. 이영민 씨 제공
지구호는 해저지진이 잦은 지역에 깊이 수백 m∼수 km 구멍을 뚫는다. 이곳에 온도나 진동(지진)을 측정하는 센서를 설치하면 해저지진이 어디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 최대 7km 깊이의 구멍을 뚫으면 맨틀까지 도달하게 된다. 지각은 맨틀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맨틀의 성분과 움직임을 알면 지진과 화산활동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지구호는 안전하게 시추하기 위해 구멍의 바깥쪽을 시멘트로 굳히는 기술과 갑작스러운 폭발을 막기 위한 폭발방지장치를 갖추고 있다. 과학동아 제공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난달 11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심해저 시추 연구선인 ‘지구(地球·chikyu)’호도 지진해일(쓰나미)의 피해를 봤다. 불과 두 달 전 한국인을 포함한 세계 과학자 27명을 태우고 해저지진이 발생하는 원인을 조사하고 돌아왔다. 지구호는 일본해양연구개발기구(JAMSTEC) 소속이지만 국제공동해양시추사업(IODP)에 참여하기 때문에 IODP 회원국인 우리나라도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 해저지진 연구하다 해저지진에 타격

공교롭게도 해저지진의 피해를 보기 전에 지구호가 연구한 분야는 해저지진이었다. 지구호는 2010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일본 남쪽 ‘난카이 주상해분’에 머물렀다. 주상해분은 해저에 있는 긴 계곡으로 거대한 땅덩어리(지각) 두 개가 만나서 생긴 해구에 퇴적물이 쌓여 얕아진 지형이다. 해구와 해분은 해저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 동일본 대지진도 일본 동쪽의 해구에서 발생했다.

지구호는 수심 3∼4km의 난카이 해분에 최대 800m 깊이의 구멍을 뚫어 원기둥 형태의 시료를 채취했다. 시료를 채취해 생긴 구멍에는 깊이 180m까지 온도센서를 넣어 온도 변화도 측정했다. 이영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국토지질연구본부 선임연구원은 “해구나 해분의 땅속 온도를 알면 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개의 지각이 만나는 접촉면은 마찰과 압력 때문에 온도가 높다. 압력이 낮은 지역은 섭씨 100∼150도, 높은 지역은 350∼450도가 되면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따라서 해구와 주상해분 전체의 ‘지열(地熱)지도’를 만들면 어디서 지진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

문제는 모든 곳에 일일이 구멍을 뚫어 온도를 잴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대신 땅속 구성물질이 얼마나 열을 전달하는지 ‘열전도도’를 측정하면 간접적으로 주변의 지열지도를 만들 수 있다. 이 연구원은 “이번 탐사에서 측정한 지역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지열온도가 높았다”며 “그 원인과 해저지진에 미치는 영향을 찾기 위해 추가 연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영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이 해저 시료의 부분별 열전도도를 측정하고 있다. 이영민 씨 제공
이영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이 해저 시료의 부분별 열전도도를 측정하고 있다. 이영민 씨 제공
○ 24시간 쉬지 않는 시추 연구

난카이 해분의 지열지도를 만들기 위해 지구호가 시추한 지역은 세 곳. 여기에서 채취한 시료는 모두 1500개로 전체 길이가 2km가 넘는다. 이 연구원은 일본인 과학자와 하루 12시간씩 교대로 시료 전체의 열전도도를 측정했다. 이 연구원은 “지구호는 기본적으로 공휴일 없이 매일 24시간 운영하는 체제”라며 “승선한 과학자와 시추전문가 모두 1일 2교대로 일한다”고 말했다.

지구호가 쉬지 않고 운영되는 것은 하루 5억5000만 원이 넘는 운영비와 시추 연구의 특성 때문이다. 갓 올린 시추 시료는 외부 공기와 접촉하거나 충격 및 진동으로 구성물이 흐트러지기 전에 각종 측정을 마쳐야 한다. 그래서 길이 3, 4km의 파이프를 거쳐 시료가 올라오면 각 분야의 과학자 27명이 순서대로 기다렸다 맡은 임무를 재빨리 마친다.

처음 시료가 올라오면 미생물과 그 잔해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은 부분을 조금 떼어낸다. 다음에는 컴퓨터단층촬영(CT)과 3차원 X선 촬영을 한다. 그 뒤 이 연구원이 드릴(천공기) 형태의 측정기로 열전도도를 잰다. 시료를 많이 훼손하지 않는 이런 측정이 끝나면 구조와 퇴적물을 살핀 뒤 원기둥을 반으로 나눠 연구용과 보존용으로 구분한다. 이 연구원은 “IODP에 참여한 국가의 과학자가 차후에도 연구를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쓰나미로 파손된 지구호의 트러스트. 좌우 360도로 회전할 수 있어 정확한 위치를 잡도록 돕는다. JAMSTEC 제공
지난달 쓰나미로 파손된 지구호의 트러스트. 좌우 360도로 회전할 수 있어 정확한 위치를 잡도록 돕는다. JAMSTEC 제공
○ “인류 첫 맨틀 시추 1년 늦어질 듯”

지구호는 18일 수리하기 위해 일본 요코하마 항에 들어갔다. 지난달 11일 쓰나미를 맞아 6개의 ‘트러스트(thrust)’ 중 하나가 손상됐기 때문이다. 트러스트는 바다 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세를 잡도록 제어해주는 360도 회전식 스크루다. 지구호는 최대 7km 이상을 수직으로 정확히 뚫기 때문에 위치가 조금만 빗나가도 시추에 차질이 생긴다.

트러스트 수리는 어렵지 않지만 향후 예정됐던 해저지진 연구는 일정 기간 연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심해저 생물체를 채취하는 다음 탐사는 취소된 상태다. IODP 한국사업단 총괄책임자인 이영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은 “지구호는 2012년 인류 최초로 땅속 10여 km 아래의 맨틀 시료를 직접 얻을 계획이었다”며 “이번 지진으로 연구가 1년 정도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구의 표면을 움직이는 맨틀을 알면 지진이나 화산 현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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