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A 씨. 병원 대신 ‘역분화 유도만능줄기세포 은행’을 찾았다. A 씨는 자신의 체세포를 은행에 접수시키고 집으로 돌아왔다. 체세포를 줄기세포로 만든 뒤 도파민 신경세포로 만들어 시험하면 A 씨의 발병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A 씨만을 위한 맞춤형 세포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르면 10년 안에 이런 영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초로 ‘역분화 유도만능줄기세포’ 은행이 설립됐기 때문이다. 김동욱 세포응용연구사업단장(연세대 의대 교수)은 26일 “질병 연구와 신약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역분화 유도만능줄기세포 은행을 세웠다”고 밝혔다. 배아줄기세포 은행은 2002년부터 서울대 의대, 차병원, 연세대 의대에서 공동으로 사업단을 꾸려 운영해왔으며 현재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료원에 위치해 있다.
○ 생체시간 거꾸로 돌려
역분화 줄기세포는 체세포의 생체 시간을 거꾸로 돌려 줄기세포 상태로 만든 세포를 말한다. 역분화 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처럼 어떤 장기로든 분화할 수 있다.
역분화 줄기세포는 인간 배아에서 추출한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윤리적 논란에서 자유롭다. 세포핵을 뺀 난자에 다른 체세포의 세포핵을 넣어 만든 복제배아줄기세포 제조 방법의 대안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해서는 환자의 체세포에 역분화를 유도하는 유전자 4개(Oct4, Sox2, Klf4, c-Myc)를 주입하면 된다. 환자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하는 만큼 세포 치료를 할 때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김 단장은 6개 질병(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소아형 당뇨병, 뒤센형 근이영양증, 소아대뇌형 부신백질이영양증, 부신척수신경병형 부신백질이영양증)을 앓는 환자 6명과 일반인 1명을 포함해 총 7명에게서 체세포를 얻어 역분화 줄기세포주 50개를 만들었다.
은행은 이 역분화 줄기세포들을 연구진에게 분양해 질병의 원인을 밝히도록 할 예정이다. 가령 뇌 속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으면서 나타나는 파킨슨병은 환자의 세포로 만든 역분화 줄기세포를 도파민 신경세포로 분화시킨 뒤 관찰해 발병 원인을 구명할 수 있다. ○ 동물 실험보다 효과적
역분화 줄기세포로 만든 세포는 환자의 체세포에서 나왔기 때문에 신약후보물질을 가장 정확히 실험할 수 있는 재료다. 그간 쥐나 원숭이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와도 사람에게 적용하려면 임상시험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다. 과학학술지 ‘네이처’ 4월 13일자에는 미국 솔크연구소에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세포로 만든 역분화 줄기세포를 다시 신경세포로 분화시켜 여러 약물의 효능을 측정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김 단장은 “앞으로 10∼20개 핵심 난치 질병에 대해 역분화 줄기세포를 수백 개까지 늘려 국내 신약 개발 등의 연구에 기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체세포 1만 개에 역분화 처리를 하면 그 가운데 1∼10개만 줄기세포가 된다. 효율이 0.01∼0.1%로 매우 낮다. 김 단장은 “바이러스를 써야 하는 유전자 대신 단백질이나 화합물을 바로 세포에 넣어 안전하게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며 “5∼10년 안에 환자 맞춤형 세포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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