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종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소장(62)은 국내 장기 이식 역사의 산증인이다. 1983년부터 수술 건수가 신장 이식 2800여 건, 췌장 이식 150여 건이다. 여기에 췌장암 1000여 건을 합하면 모두 4000건에 가깝다. 요즘도 사흘에 한 번은 수술을 집도한다. 경험이 쌓인 만큼 성공률도 높다. 1999∼2010년 신장과 췌장을 동시에 이식받은 환자 가운데 1형 당뇨병 환자의 5년 생존율은 85.1%, 2형 당뇨병 환자는 100%다.》
1형 당뇨병은 췌장에서 인슐린 생성이 안 되는 경우, 2형 당뇨병은 인슐린 생성은 되지만 분비가 안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현재까지 당뇨병을 완치하는 방법은 췌장 이식밖에 없다.
4000건의 수술 가운데 한 교수가 꼽은 생애 최고의 수술은 무엇일까. 그는 가장 성공적인 수술이 아니라 가장 도전적인 수술을 꼽았다. 뇌사자로부터 신장을 이식한 1990년의 수술. 이로 인해 그는 경찰과 검찰에 불려 다니며 곤욕을 치러야 했다.
○ 10시간 대수술 성공했지만… 살인죄 기소당할 뻔
한 교수는 그해 1월 25일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진 환자의 신장을 김모 씨(55)에게 이식했다. 김 씨는 8년간 신부전증을 앓던 환자였다. 신장 이식을 받기 전까지 이틀에 한 번은 5시간을 누운 채로 인공 투석을 해야 했다. 물 한 모금, 김치 한 젓가락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10시간에 이르는 수술이 끝난 뒤 김 씨는 “다시 태어났다”며 한 교수에게 감사했다. 김 씨에게 투석을 받지 않고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지금은 전담 코디네이터가 있지만 당시는 의사가 직접 장기 기증자와 이식자를 찾아야 했다. 뇌사자가 생기면 신장내과 의사한테 환자 명단을 받아 “뇌사자의 신장을 이식받을 수 있는데 수술을 하겠느냐”고 직접 전화를 돌렸다.
뇌사자로부터 신장을 이식하는 첫 수술은 1989년에 했다. 경과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자 신부전증 당뇨병 환자 병동에서 이식받으려는 환자가 줄을 서기 시작했다. 김 씨도 그중 1명이었다. 환자가 새 삶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줄 알았던 수술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신문에 관련 기사가 실리면서 경찰과 검찰에 불려 다니기 시작했다.
검사는 “왜 뇌사자를 건드렸나. 돈을 받고 장기매매한 것 아니냐”고 캐물었다. 살인이 아니냐는 사회적 비난이 쏟아졌다. 수술실에 들어가기도 겁이 났다. 의료계에서도 눈총이 따가웠다.
“검사도, 기자도 뇌사가 뭔지 인식조차 없던 시절이었어요. 뇌사는 식물인간 상태와 다릅니다. 뇌사는 뇌 전체가 손상돼 곧 신체 기능이 멈춥니다. 식물인간은 손상 부위가 대뇌의 일부이므로 스스로 숨을 쉴 수 있어요. 의학적으로 뇌사만 죽음으로 인정하는 이유입니다.”
뇌사하면 보통 2주 안에 심장이 멎는다. 하지만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는 법이 없으니 실정법 위반이었다. 신장을 이식받은 김 씨는 분개하며 보건사회부 검찰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한 교수의 구명운동을 펼쳤다.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78년에 뇌사자 신장 이식이 이뤄진 뒤 사회적 논란 끝에 법이 마련됐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 쉽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곤혹스럽더라고요.”
다행히 3개월이 지나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정부는 뇌사자의 판단 기준을 만들어 입법을 추진했다. 1999년이 되어서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 장기 이식은 기적을 만드는 수술
장기 이식을 하다 보면 애틋한 사연을 자주 만난다. 그중 하나는 5년 전 예비 신랑 백모 씨(46)로부터 신장 하나와 췌장의 40%를 이식받은 예비 신부 박모 씨(32). 뇌사자가 아닌 살아있는 기증자로부터 신장과 췌장을 당뇨 합병증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 자체가 처음인 데다 예비 신랑의 순애보 때문에 수술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한 교수는 “아픈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인데 장기 기증까지 한다고 하니 성공해야 한다는 부감감이 컸다”고 말했다.
둘은 나란히 누워 수술실로 향했다. 막상 개복을 하고 나니 예상보다 어려웠다. 박 씨의 정맥이 피떡으로 모두 막혀 있었기 때문. 신장과 췌장을 이식해도 제 기능을 할지 확신하기 힘들었다.
다행히 췌장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문제는 신장이었다. 결국 이식 수술 후 동료 교수가 피를 돌게 하는 2차 수술을 했다. 신장이 숨을 쉬기 시작하자 소변이 쏟아졌다. 박 씨 부부는 그해 여름 결혼했고 지금까지도 행복하게 산다.
힘들다는 외과의사 중에서도 장기 이식은 더 고달픈 분야다. 늘 대기해야 하고 사후 관리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 한 교수는 이런 분야를 택한 이유에 대해 “기적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환자가 췌장 이식 수술을 받은 뒤 이르면 바로 다음 날 인슐린을 끊습니다. 평생 약을 먹거나 투석을 받아야 했는데 수술 한 번으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납니다. 환자나 가족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 그래도 의사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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