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인지 남 탓인지… 아기도 상황판단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4일 03시 00분


평균 16개월 된 아기에게 장난감 실험해보니…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이 실험한 결과 16개월 된 아기도 문제가 발생하면 실패 원인을 합리적으로 추론한다는 사실이 밝 혀졌다. 사진은 네덜란드에서 아기에게 자궁과 흡사한 환경을 제공하는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이 실험한 결과 16개월 된 아기도 문제가 발생하면 실패 원인을 합리적으로 추론한다는 사실이 밝 혀졌다. 사진은 네덜란드에서 아기에게 자궁과 흡사한 환경을 제공하는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로이터 연합뉴스
올해 초 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쌍둥이 아기가 마주 보고 ‘옹알이 대화’를 하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 영상은 조회수가 1000만이 넘어섰고 국내 한 기업의 광고에도 활용되는 등 인기를 끌었다. 영상 속의 아기들은 마치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을 하는 모습이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와∼아기들이 무슨 생각을 하나 봐”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동물적 본능 이외에 별다른 능력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아기들이 생각보다 많은 능력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서 화제다. ‘백지’처럼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지만 돌이 갓 지난 아이들도 나름대로 추론을 하면서 상황에 대처한다는 연구다.

○ 16개월 아기, 상황 파악 후 부탁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뇌인지과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권효원 씨(30·사진) 연구팀은 평균 나이 16개월인 아기 88명을 대상으로 장난감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아기를 부모와 함께 테이블에 앉힌 뒤 모양은 같고 색깔만 초록, 노랑, 빨강으로 다른 장난감 3개를 보여줬다. 장난감은 옆면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음악 소리가 나도록 제작했다. 먼저 초록색 장난감에 있는 버튼을 눌러 초록색 장난감에서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아기에게 인지시켰다. 그러고 난 뒤 초록색 장난감과 노란색 장난감에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작해서 아기에게 다시 보여줬다.

장난감을 받은 아기 대부분은 원래 소리가 났던 초록색 장난감에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자 당황하며 부모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기들 3명 중 2명(65%) 정도는 잠시 뒤 장난감을 부모에게 주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방금 전까지 장난감에서 소리가 났는데 자신이 누르자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소리가 나도록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노란색 장난감을 받았을 때 반응은 초록색 때와는 달랐다. 아기들은 버튼을 눌러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다른 장난감(빨간색)에 관심을 보였다.

실험 대상 아기 10명 중 8명이 노란색 대신 빨간색 장난감을 집으려고 하거나 부모에게 달라고 요청했다. 권 씨는 “‘노란색 장난감은 원래 소리가 나지 않는 장난감’이라는 인식이 작용한 결과”라며 “적은 통계 정보만 가지고도 자신과 주변 사물 중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추론해 적절한 사후 행동을 취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24일자에 실렸다.

○ 예상 못한 상황엔 ‘깜놀’하면 응시


“엄마 없다”고 말하고 아기 시선에서 사라질 때, 아기가 엄마가 원래 있던 곳을 빤히 바라보는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헝가리 중앙유럽대 인지발달센터 에르뇌 테글라스 연구원과 MIT 뇌인지과학과 조시 테넌바움 박사 공동연구팀은 12개월 된 아기를 대상으로 컴퓨터 모델링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아기들에게 파란색 공 세 개와 빨간색 공 한 개가 박스 안에서 이리저리 이동하고 있는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화면이 ‘0.04초’ 동안 꺼지도록 설계했다. 화면이 잠시 꺼진 동안에는 화면상에 보이는 공을 실제로 아기 옆에 가져다 놓았다. 짧은 시간 동안 화면에 있던 공이 자신의 옆으로 이동한 상황을 목격하자 아기들은 화면을 2초 동안 응시했다.

아기들은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공인 빨간색 공이 나왔을 때와 화면상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있던 공이 나왔을 때 화면을 더 오래(4초) 쳐다봤다. 테넌바움 박사는 “아기들은 놀랄수록 사물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아기들이 스크린을 빤히 본 이유는 화면 속에 있던 공이 갑자기 나타나거나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공이 나와 놀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연구 결과가 아기들도 추론이 맞지 않으면 놀란다는 증거”라며 “인간이 어렸을 때부터 경험보다는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사건을 예측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달 27일 ‘사이언스’ 표지논문으로 소개됐다.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원호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won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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