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수술]<5>24시 대동맥클리닉 지키는 송석원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4일 03시 00분


대동맥 파열 직전… 새벽 2시의 ‘미션 임파서블’

《송석원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38)는 2008년 대동맥클리닉이 문을 열 때 전국 모든 병원 응급실에 안내문을 돌렸다. 대동맥 수술이 필요하면 즉각 자기에게 연락을 달라며 휴대전화 번호까지 적어 놓았다. 잘난 체한다거나 왜 선전을 하느냐는 말이 나올 법했지만 그런 반응은 없었다. “하기 힘든 수술이다 보니 그냥 네가 해라, 이런 분위기였어요.” 송 교수는 당시를 돌이키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송석원 교수가 회진을 돌면 환자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동료 의사도, 환자도 감탄하는 이유는 그가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환자를 돌보기 때문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송석원 교수가 회진을 돌면 환자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동료 의사도, 환자도 감탄하는 이유는 그가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환자를 돌보기 때문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생사 오가는 대동맥파열 수술 전문가

대동맥은 심장에서 온몸에 혈액을 공급하는 가장 큰 혈관이다. 이곳이 파열된 환자는 죽음의 문턱 바로 앞에 서게 된다. 출혈이 심하면 피부색도 죽음의 색인 보랏빛으로 변한다.

대동맥이 완전히 터지면 환자는 1분을 못 넘긴다. 다행히 피가 굳으면 30분∼1시간이 의사에게 주어진다. 이 짧은 순간에 송 교수는 전력을 다해야 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24시간 대동맥 클리닉을 운영한다. 이 때문에 다른 병원에서 응급수술하기 쉽지 않은 평일 오후 9시∼오전 6시, 주말이나 연휴에 환자가 몰린다.

그가 지난해 병원에서 지낸 시간을 따져 보니 하루 평균 18시간이 넘었다. 시간을 아끼려 진료실에 접이식 침대를 두고 칼잠을 자다가 얼마 전에는 아예 병원 바로 옆으로 이사를 했다. 송 교수를 추천한 교수는 “젊은 의사가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지금도 환자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다. 퇴원 후 여기저기 아프거나 궁금한 점이 많을 테니 언제든 연락하라는 것. 하루 2, 3통은 전화가 온다. 이런 친절함 덕분인지 그는 원내에서 환자의 감사편지를 가장 많이 받는 의사가 됐다.

‘생명의 은인 송석원 교수님 감사합니다.’(대동맥수술을 못 해 여러 병원을 전전했던 강태선 할아버지(73) 며느리의 편지)

‘갓 태어난 아이 얼굴을 보게 해주셨습니다.’(만삭 부인과 함께 입원했던 김성남 씨(42)의 전화)

○ 심장 마사지하며 혈관 잇는 수술

국내 관상동맥 수술이 연간 2500건인 데 비해 대동맥수술은 800건에 불과하다. 대동맥이 파열되면 수술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숨지므로 수술 건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그 800건 가운데 100건 정도를 송 교수가 담당했다.

“의사가 기피하는 흉부외과 중에서도 대동맥 수술은 3D입니다. 24시간 대기해야 하고 환자가 깨어나야만 수술이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일이 힘든 수술의 연속. 송 교수가 꼽은 ‘내 생애 최고의 수술’은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수술이었다.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2월 어느 날 새벽 2시. 다른 병원으로부터 67세 남자 환자가 응급실로 실려왔다. 대동맥은 지름이 2.5cm인데 이 환자는 9cm로 늘어난 상태.

혈관은 흡연 고혈압 동맥경화증으로 인해 두꺼워지다가 어느 순간 터져버린다. 풍선 불기가 처음에만 힘들듯이 5.5cm가 넘어서면 순식간에 늘어난다.

응급실로 뛰어가니 이미 심장이 멈춰 있었다. 의사 한 명이 침대에 올라가 깍지를 끼고 심장을 누르면서 수술실로 향했다. 20분 정도 지나니 다행히 심장이 뛰었다.

수술실에서 환자의 배를 연 뒤에는 다른 한 명이 찢어진 대동맥을 손으로 잡고 출혈을 막았다. 송 교수는 인조혈관을 이어 붙였다. 의사 셋이 꼬박 밤을 새우며 환자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환자는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다. 뇌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일어나는 뇌중풍(뇌졸중)이나 마비 증상도 없었다. 수술실의 긴장과 초조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심장 수술은 심장을 멈추게 한 뒤 시작합니다. 체온을 28도까지 낮추고 온몸에 피를 흐르지 않게 합니다. 심장을 고친 뒤 쿵쿵 뛰기 시작하는 순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 흉부외과는 나의 운명

송 교수는 흉부외과 전문의 시험에서 1등을 . 의대 졸업 성적도 최우수 그룹. 좀 더 편한 진료 분야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을까.

“대동맥 수술은 합병증이 많고 사망률이 높은 편입니다. 레지던트 시절에 보니까 환자 상태가 좋아지기보다는 나빠지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그래서 꼭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대동맥 수술을 할 때는 모든 레지던트가 긴장했다. 인조혈관을 꿰맨 부위에서 피가 나와 수술을 다시 하는 비율이 30∼40%였다. 출혈이 심하면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고 수술이 잘 끝나도 뇌중풍이나 뇌출혈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환자도 생겼다. 이럴 때면 ‘도대체 왜 수술을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생겼다. 하지만 환자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은 더욱 강렬해졌다.

최근에는 수술효과가 크게 나아졌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올해 대동맥 수술 후 사망률이 2%까지 떨어졌다. 최근 3년간은 7%였다. 이전 다른 병원에서는 17.8%였다.

응급실에 실려와 수술을 받는 시간이 30분 이내로 줄었고 인조혈관 기술이 좋아진 덕이다. 마취과 심장내과 중환자실 간 협진 체계를 갖추면서 합병증도 크게 줄었다. 그는 흉부외과를 지원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배를 열고 혈관을 잇는 수술이 힘들어서라면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피부에 스텐트를 넣는 비침습적 치료처럼 의술은 갈수록 발달하니까. 환자의 수술 전후가 다른 모습을 보는 과정만큼 의사로서 보람 있는 일이 있을까.”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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