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이영미 씨(51)는 지난해부터 얼굴이 자주 붉어지고 식은땀이 흐르는 증상이 나타났지만 폐경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증상이려니 싶어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건강검진에서 ‘고혈압’ 진단을 받고는 부랴부랴 호르몬제 복용을 시작했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부족하면 혈관이 수축될 수 있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난 뒤였다. 우리나라 여성은 평균 폐경 연령인 48세를 전후해 5∼10년 사이에 갱년기 증상을 겪는다. 난소 기능이 점차 저하되고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분비량이 감소하면 폐경이 찾아온다. 갱년기 초기에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홍조 증상을 가장 흔하게 겪고, 식은땀이나 불면증도 나타난다. 골밀도가 낮아지는 뼈엉성증(골다공증)도 갱년기 증상이다.》 에스트로겐이 부족하면 고혈압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혈관을 이완시키고, 혈관 긴장도를 낮추는 역할을 하는 에스트로겐이 부족하면 혈압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증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데다 혈압이 서서히 올라가므로 보통 생활습관 등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지만 근본 원인은 갱년기 증상에 있다.
○폐경기 여성 심혈관 질환 위험 크게 증가
폐경 여성들의 심혈관 질환 위험은 폐경 전 여성에 비해 2∼4배 정도 증가한다. 대개 협심증, 심근경색과 같은 관상동맥질환은 중년 이후 남성에게 발병 빈도가 높은 대표적인 심혈관 질환이다. 보통 남성에 비해 여성의 발병률이 10분의 1 정도다. 하지만 폐경 이후부터 여성의 발병률이 높아져 75세 이상에서는 전체 관상동맥 질환자 가운데 여성이 55.4%에 이르게 된다.
고혈압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심혈관 질환인 심장 발작(심근경색, 협심증)이나 심부전, 말초동맥 질환 등의 원인이 된다. 심혈관 질환은 한 번 발병하면 생명을 위협할 뿐 아니라 치료기간이 길고 완치도 어렵다.
이를 예방하려면 에스트로겐을 다시 보충해주면 된다. 지난해 대한폐경학회는 “60세 이하 건강한 폐경 여성이 호르몬을 복용하면 심혈관 질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체중 증가와 유방암 위험 낮은 최신 호르몬요법
지금까지 많은 여성들은 호르몬 요법을 기피했다. 호르몬제를 복용하면 체중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에스트로겐은 체내 수분과 나트륨을 체내에 머물러 있게 하는 수분 저류 현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최근에는 천연 프로게스테론과 유사한 합성 호르몬인 드로스피레논과 에스트로겐을 병용하는 호르몬 치료 요법이 개발됐다. 드로스피레논은 체내의 수분과 나트륨을 체외로 배출되도록 도와 수분 저류 현상으로 인한 체중 증가를 막아준다.
여성들이 호르몬 치료를 꺼리는 또 다른 이유는 유방암 발병 위험성이다. 2002년 미국 국립보건원 여성건강계획(WHI)에는 호르몬요법이 유방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를 반박하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우선 당시 조사 대상자가 폐경 이후 평균 10년이 지난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인구학적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올해 4월 미국의사협회지에는 ‘여성 호르몬 단독 요법이 유방암 발생 위험을 23% 정도 감소시켜 준다’는 연구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박형무 대한폐경학회장(중앙대 의대 교수)은 “폐경후 호르몬 요법은 이점이 큰데 잘못된 정보 때문에 치료를 기피하는 환자들이 많다”며 “호르몬 요법은 일찍 시작할수록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면 전문의와 상담해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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