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기 안산시에 있는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옛 안산캠퍼스) 연구실. 이병주 전자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로봇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귓속 수술은 좋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 의료계의 상식이다. 고막에서 달팽이관까지를 말하는 중이(中耳)에 생기는 염증은 뼈(측두골) 안쪽까지 퍼져 뼈를 갈아내는 시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주변엔 신경이나 뇌막 같은 중요한 조직이 얽혀 있어서 자칫하면 안면마비, 청각손실 같은 문제가 생긴다. 만일 수술 드릴이 환자의 몸 속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또 신경 근처로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기술이 있다면 의료사고 없이 쉽게 수술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교수팀은 세계 처음으로 3차원(3D) 영상기술을 접목한 수술로봇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해냈다.
이 교수는 기자에게 새롭게 개발한 로봇 ‘이소봇(ESOBOT·Ear Surgical Robot)’을 이용한 수술체험 기회를 제공했다. 옆에 있는 모니터를 보며 로봇팔 끝에 붙은 드릴을 움직였다. 복사뼈처럼 생긴 귀 뒤쪽 측두골 모형은 손을 움직이는 대로 사각사각 깎여 나갔다. 화면에는 환자의 귓속 영상과 드릴이 함께 표시됐다. 드릴을 잡고 앞뒤로 움직이면 화면 속 드릴도 따라서 움직였다. 로봇팔은 드릴의 위치를 인식하는 장치인 셈이다.
“그 부분이 귀의 신경입니다. 수술 드릴을 가까이 가져가 보세요.”
이 교수는 기자에게 일부러 중요한 기관에 ‘상처’를 내 보라고 했다. 손목을 움직이자 곧 ‘삑∼’ 하는 경고음과 함께 화면이 붉게 변했다. 깜짝 놀라 팔을 앞으로 쭉 뻗었지만 드릴은 신경 쪽으로 더 움직이질 않았다. 방어벽을 친 듯 옆쪽으로만 미끄러졌다. 로봇팔이 스스로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소봇은 이 교수팀이 한양대 의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홍재성 로봇공학과 교수와 공동으로 개발했다. 컴퓨터단층촬영(CT) 기법을 이용해 환자의 안면 윤곽을 3D 데이터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 뒤 로봇팔에 수술용 전동드릴을 붙였다. 이 로봇으로 측두골에 구멍을 내고 안쪽 공간인 ‘중이’ 속을 수술할 수 있다. 현재 팬텀(마네킹)을 대상으로 실험하며 정밀도를 높이고 있다. 해부실습용 시신과 동물실험을 거쳐 5년 안에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소봇 개발 소식을 전해들은 정성욱 부산 동아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가장 조심하는 것이 수술 도중 신경을 0.1mm라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라며 “손상 직전 실시간 내비게이터(안내) 기능만 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팀의 연구는 지난달 지식경제부의 ‘2011년 로봇분야 신규 산업원천과제’에 선정돼 앞으로 5년간 130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제품화는 로봇전문기업 ‘고영테크놀러지’가 맡는다. 가격은 대당 2억 원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교수는 “한양대, 서울아산병원 의료진과 협력해 상용화를 추진할 것”이라며 “9월 열리는 미국전기전자학회(IEEE)에서 관련된 연구 성과를 발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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