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체마비환자 로봇다리로 ‘터벅터벅’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일 03시 00분


생산기술硏 세계 3번째 개발
보행로봇 ‘로빈’ 임상시험 현장

《“아직 위험해서 안돼요.” /“혼자 할 수 있다니까요.” /지난달 31일 오후 대전 충남대병원 임상보행분석실. 재활치료를 위해 이곳을 찾은 이진목 씨(51)는 “스스로 걸어보겠다”면서 재활치료사들과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다. 척수마비장애인인 이 씨는 두 다리에 감각이 없어 혼자서는 걸을 수 없다. 그가 걸어보겠다고 조르는 것은 믿을 만한 도우미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 로봇융합연구그룹과 충남대 의대 재활의학과 조강희 교수팀이 공동개발하고 있는 외골격로봇(입는 로봇)‘로빈(Robin-P1)’이 주인공이다. 로빈은 이 씨 같은 척수마비 환자를 위한 보행로봇으로 로봇 다리가 환자의 신경과 근력을 대신해 준다.》

척수마비장애인인 이진목 씨(가운데)가 입는 로봇 ‘로빈’을 이용해 걷기운동을 하고 있다. 로빈을 이용하면 하체를 쓸 수 없는 중증장애인도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척수마비장애인인 이진목 씨(가운데)가 입는 로봇 ‘로빈’을 이용해 걷기운동을 하고 있다. 로빈을 이용하면 하체를 쓸 수 없는 중증장애인도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로봇융합연구그룹에서 개발 중인 신형 로빈. 완성품 로빈에선 무게중심을 확인하기 위해 목발을 사용할 수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로봇융합연구그룹에서 개발 중인 신형 로빈. 완성품 로빈에선 무게중심을 확인하기 위해 목발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씨는 지난해 충남대병원에서 보행로봇 개발에 참여할 환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실험에 참가한 지 약 1년. 걷기 위한 체력훈련과 로빈과의 적응 훈련을 거쳐 실제로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무게 감지해 “진짜 걷는 느낌”


로빈은 옷처럼 입을 수 있는 ‘외골격 로봇’이다. 벨크로(일명 찍찍이)를 붙여 알루미늄합금으로 만든 로봇 다리를 환자의 다리 바깥쪽에 고정한다. 24V 출력의 전기모터가 회전하며 다리를 펴고 접도록 돕는다.

무게는 13.5kg. 6시간 동안 쓸 수 있는 배터리를 장착해도 17kg이지만 로봇에서 힘이 나오기 때문에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군인들의 힘을 키워주는 군사용 외골격 로봇은 50∼100kg에 달한다.

이런 ‘척수환자용’ 외골격로봇이 개발된 것은 이스라엘의 리워크와 미국의 이레그스에 이어 세계적으로도 세 번째며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로빈이 걸을 수 있는 원리는 ‘체중’ 감지에 있다. 사람은 왼쪽 발이 걸어 나갈 때는 저절로 오른쪽 어깨를 앞으로 내민다. 발만 계속 걸어 나가면 엉덩방아를 찧기 때문이다.

로빈 개발팀은 이 점에 착안했다. 로빈의 발에는 무게를 감지하는 ‘감압센서’가 들어있어 무게를 느낀 것과 반대쪽에 있는 발을 앞으로 움직여 준다.

이 씨는 한 달 전 처음 로빈에 올라탄 이후 매주 3회씩 걷기 연습을 해 왔다. 로봇에 적응하기 위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재활치료사가 버튼을 눌러 주었다. 그러던 이 씨는 지난달 29일 처음으로 로빈의 ‘자율주행모드’를 체험했다.

재활치료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체중이동만으로 혼자서 걸어 본 셈이다. 그리고 이틀 만에 다시 병원을 찾은 이 씨는 ‘이번에도 혼자서 걸어보겠다’고 주장했다.

이 씨의 재촉에 재활치료사는 결국 로봇을 자율주행모드로 바꿨다. 그 대신 등 쪽에 안전줄을 달았다.

이 씨는 땀을 쏟으면서도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충남대병원에선 비디오카메라와 적외선 센서 등으로 모두 꼼꼼히 측정하고 있다.

이 씨의 걷기운동 자료는 모두 로빈 개발팀이 있는 생기원 로봇융합연구그룹으로 보내진다. 연구팀은 이런 자료를 꼼꼼히 확인해 우선 보행속도부터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금은 비장애인의 10∼15% 수준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안전성도 높이기 위해 연구팀은 로빈과 함께 쓰는 ‘전자목발’을 개발하고 있다. 목발 끝에도 감압센서가 들어있어 환자의 체중이 어디에 모여있는지를 훨씬 빠르고 정확히 알 수 있다.

○ “계단 오르내리는 기능도 개발 중”

박현섭 생기원 수석연구원은 “2, 3년 후면 로빈을 이용해 모든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의자에 앉거나 서고, 계단도 걸어 오르내리는 기능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빈 상용화의 최대 걸림돌은 연구비다. 로빈 연구는 2009년 시작됐다. 3년 연구과제로 지식경제부에서 매년 20억 원의 연구비를 받았지만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올해 초 연구비 지급이 중단됐다. 현재는 생기원 자체 사업비로 최소한의 연구만 진행하고 있다.

조강희 충남대 의대 교수는 “(비용 문제로) 20명의 임상시험 참여 환자 중 지금은 한 사람만 남았다”며 “임상연구 수가 적으면 로봇의 제품화 시점도 한층 늦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척수마비장애인은 10만 명에 달한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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