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언트, 아스피린과 함께 복용시 스텐트 혈전증 50% 감소
유럽심장학회 새 가이드라인 “아스피린과 함께 복용해도 좋다”
나이가 들면 뇌 심장 등 주요 혈관이 지나가는 부위엔 이른바 ‘시한폭탄’이라 불리는 혈전(피떡)이 잘 생긴다. 혈전을 한자로 풀어쓰면, 피 ‘혈(血)’, 마개 ‘전(栓)’으로, 뭉쳐진 피가 마치 마개처럼 혈관을 막는다는 의미다. 손에 상처가 났을 때 생기는 상처 딱지도 혈전의 일종이다.
이처럼 적당한 혈전은 지혈에 도움을 주고, 외부 위협을 막아주는 방어막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혈관 속의 혈전은 생명에 위협을 준다. 특히 심장혈관에 생기는 혈전은 혈관 전체를 막아버리는 심근경색과 혈관을 좁게 만드는 협심증을 일으킨다. 심하면 사망에 이르므로 병원에선 가장 우선시하는 응급질환이다.
지난달 27∼3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심장학회(ESC)에는 3만3000여 명의 전문가가 참석했다. 심장 치료에서 주요 쟁점이 되어온 심혈관질환 치료법과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그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급성 관상동맥(심장동맥)증후군 환자의 관리법. 이들 환자는 응급 치료를 받아 위기를 넘겨도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혈전으로 인해 재발 가능성이 높아진다.
○급성 관상동맥증후군 스텐트 시술 뒤 혈전 잘 생겨
심혈관질환 중에서도 대표적인 중증 질환인 급성 관상동맥증후군은 심장동맥이 완전히 막히는 심근경색과 부분적으로 막히는 협심증을 일컫는 말이다. 급성 관상동맥증후군의 80%는 심근경색이다.
치료를 위해서는 다리에 있는 동맥 속으로 금속 철망 모양의 스텐트나 풍선을 넣어 막힌 부위의 심장 혈관을 뚫는다. 이 방법이 관상동맥 중재술이다. 흉터가 남지 않고 치료 시간도 짧아 자주 이용되는 시술법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스텐트 시술로 고비를 넘겼다 하더라도 적절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스텐트 주변에 다시 혈전이 생겨 심장동맥을 막아 재발 위험이 높아진다.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가 2009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급성관상동맥증후군의 재발 건수는 3만5770건으로 전체 발생건수 13만4000여 건의 26.7%에 이르렀다.
○스텐트 혈전증 막는 신약 속속 도입
의료계에서는 혈전으로 인한 급성관상동맥증후군 재발을 막으려면 항혈전제를 적어도 1년간 복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엔 기존 항혈전제보다 효과가 좋은 신약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1년을 복용할 때 급성 관상동맥증후군 재발로 인한 심혈관계 사망의 발생 위험을 크게 줄인 프라수그렐(상품명 에피언트), 티카그렐러(브릴린타)가 대표적이다.
30개국 1만3000여 명의 환자에게 새로운 항혈전제인 프라수그렐과 아스피린을 함께 복용토록 한 임상시험 결과 심근경색이나 뇌중풍(뇌졸중) 사망 및 재발률을 19%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스텐트 혈전증의 경우 50% 이상 감소했다.
이 때문에 유럽심장학회는 관상동맥 중재술을 받은 급성관상동맥증후군 또는 불안정 협심증 환자들에게 이 약들을 아스피린과 함께 복용시키는 게 좋다는 가이드라인을 올해 처음으로 만들었다.
독일 루트비히스하펜 의대 심장내과 과장 우베 지머 교수는 “급성관상동맥증후군 환자 중에 △뇌중풍이 동반되지 않고 △75세 미만이며 △체중 60kg 이상인 경우 프라수그렐을 복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은 치료법”이라고 말했다.
○퇴원 후 1년 내 이것만은 꼭 지켜라
혈전으로 인한 급성관상동맥증후군은 예방과 치료만큼 치료 후 관리도 중요하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최소 12개월간 꾸준히 혈전 생성을 막는 항혈전제를 복용해야 하며 식습관과 운동습관을 개선하는 등 생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약은 처방에 따라 한 알도 빠짐없이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용량으로 복용해야 한다. 몸이 좋아졌다고 느껴져도 복용하고 있는 약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또 임의로 1회 먹어야 할 용량을 줄이거나 늘려도 안 된다.
음식은 반드시 싱겁게 먹어야 한다. 소금 대신 고춧가루, 후추, 마늘, 식초를 써서 맛을 내도록 한다. 통조림 제품을 사용할 때는 통조림 안의 국물을 버리거나 헹군 후 조리해 염분의 농도를 낮추는 게 좋다. 고지방 어류(오징어, 장어 및 갑각류), 고지방 유제품(치즈, 생크림, 아이스크림 등), 육류를 제한한다. 그 대신 식물성 단백질(콩, 두부류), 흰 살 생선을 먹는 것이 좋다. 튀기거나 부친 음식보다는 삶거나 찌거나 구운 음식을 먹는다.
운동은 식사를 마치고 1시간이 지난 뒤 하도록 한다. 매주 3회 이상 하며 1회에 30∼60분 정도가 좋다. 땀이 조금 나고 숨이 약간 가쁠 정도의 강도로 꾸준히 하는 것이 좋고,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일시에 힘을 쓰는 운동은 피한다. 걷기, 자전거, 수영, 스트레칭 등의 유산소 운동이 좋다. 평소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다.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품고 사는 심장질환 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2∼3배 높게 심장질환이 재발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머 교수는 “행복하지 않더라도 행복한 느낌, 긍정적인 사고를 유지하면 심장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면서 “초콜릿이 심장질환 예방에 좋다는 것도 초콜릿이 좋은 음식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먹었을 때 우울한 기분이 나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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