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빨라지는 우주 팽창 속도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우주가 암흑에너지를 ‘액셀(가속 페달)’ 삼아 점점
빨리 팽창한다는 내용을 밝힌 천체물리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암흑에너지는 우주 전체에 넓게 퍼져 있으며 우주의 약 73%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어 우주론 최대 수수께끼로 불린다. 암흑에너지 상상도.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올해 노벨 과학상은 기존 이론들을 뒤집은 연구에 돌아갔다.
물리학상은 우주가 점점 느리게 팽창할 것이라는 100여 년의 ‘믿음’을 보기 좋게 깨뜨린 이론에, 화학상은 200년간 변함없던 결정(結晶·crystal)의 정의를 바꿔버린 업적에 돌아갔다. 기존의 이론을 뒤집은 역발상의 아이디어에 수상의 영광이 돌아간 만큼 이들이 학계에 남긴 숙제도 만만찮다.
우주 팽창을 가속시키는 ‘액셀(가속 페달)’로 지목된 암흑에너지(dark energy)는 그 실체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준결정의 용도는 아직 모호하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는 이번 노벨상 수상을 ‘시기상조’라고 평가했다.
○ 암흑에너지는 우주 최대 수수께끼
‘암흑에너지’라는 용어는 1998년 처음 등장했다. 암흑에너지는 우주의 약 73%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는 밝혀진 게 전혀 없다. 한 곳에 뭉쳐 있지 않고 널리 퍼져 있으며 인력(중력) 대신 척력으로 작용해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정도가 전부다.
암흑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걸 믿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됐다. 2003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우주 초기모습을 공개했고, 같은 해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DSS)’라는 국제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은하 25만 개가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 분석하면서 암흑에너지가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이 처음 나왔다.
천체물리학자들은 암흑에너지의 비밀을 푸는 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면 이는 노벨상 몇 년 치를 몰아줄 정도의 업적이라고 얘기한다. 그만큼 암흑에너지는 우주론 최대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미국 존스홉킨스대 애덤 리스 교수는 “노벨상 수상은 우주가 가속 팽창한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인정받은 결과이지 암흑에너지 때문은 아니다”라면서 암흑에너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유럽우주국(ESA)은 약 7750억 원을 들인 우주망원경 ‘유클리드(Educlid)’를 2019년에 쏘아 올려 암흑에너지를 연구할 계획이다. NASA도 약 1조9000억 원을 투입해 ‘WFIRST’라는 적외선 우주망원경으로 암흑에너지의 실체를 밝힐 예정이다.
‘준결정’ 비규칙적 패턴 준결정 표면에 보이는 패턴. 언뜻 보기에는 규칙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주기성을
띤다. 1982년 다니엘 셰흐트만 교수가 처음 준결정을 발견했을 때 학계는 이를 믿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뒤 여러 연구가
뒷받침되면서 준결정은 결정의 개념을 바꾼 발견으로 인정받았다. 준결정은 강도가 강하고 내마모성이 우수하지만 가격이 비싸고 유리처럼
쉽게 깨져 활용도는 낮은 편이다. 영국 리버풀대 제공○ 잘 깨지는 준결정, 활용도 떨어져
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준결정(準結晶·quasicrystal)’도 어렵기로는 만만치 않다. 5일 수상자가 발표되자 외신들은 일제히 “조롱받던(ridiculed) 이스라엘 화학자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제목을 달았다. CNN은 “화학계의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과학자가 노벨상을 가져갔다”고 보도했다. 절대 붕괴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베를린 장벽이 한순간 허물어진 것만큼 준결정 발견이 혁명적인 사건이라는 뜻이었다.
다니엘 셰흐트만은 1982년 준결정을 처음 발견했다. 당시 셰흐트만은 미국 표준국(현 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서 국방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특이한 물질을 찾고 있었다. 셰흐트만은 5일 이스라엘공대(테크니온) 홈페이지에 “전자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결정 구조를 발견했다”면서 “세고 또 세 봐도 이상한 지점(준결정)이 10군데였는데, 속으로 ‘말도 안돼, 있을 수 없어!’라는 말만 되뇌었다”며 발견의 순간을 회상했다.
학계는 처음에 이 발견을 ‘미친 소리’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셰흐트만은 물리학 분야 유명 학술지인 ‘응용물리학 저널’에 준결정에 관한 첫 논문을 투고했지만 ‘게재 거부’라는 통보를 받았다. 연구그룹 책임자는 셰흐트만이 팀의 명성에 먹칠을 한다며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2년 뒤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물리학계가 준결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후속 연구들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몇 년 전부터 셰흐트만은 노벨상 후보로 계속 거론됐다.
하지만 준결정 발견 30년이 다 되도록 관련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준결정은 매우 단단하면서도 유리처럼 쉽게 깨진다. 결정질과는 달리 구조가 촘촘하지 않기 때문에 마찰력이 적어 단단한 반면, 결정질과 비결정질의 중간 물질이기 때문에 쉽게 깨지는 양면성을 갖는 것이다. 김도향 연세대 재료공학과 교수(준결정재료연구단장)는 “산업에서는 아직 활용도가 떨어지는 편”이라면서 “마그네슘 같은 가벼운 금속에 준결정을 넣어 강도를 높인 뒤 자동차나 비행기의 소재로 활용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브루스 보이틀러 박사와 프랑스 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 쥘 호프만 박사, 미국 록펠러대 랠프 스타인먼 교수 등 3인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물리학상이나 화학상처럼 기존의 발견을 획기적으로 뛰어넘은 것은 아니지만 외부 병원체의 인식 단계부터 면역반응 활성화에 이르기까지 면역 체계 전반적인 작용을 규명해 질병 발생 메커니즘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원호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won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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