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젊은 의사가 택시를 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택시운전사를 심폐소생술(CPR)로 살린 적이 있다. 세브란스병원에도 이런 의료인이 있었는데, 바로 손애리 간호사다.
지난해 가을 태국으로 휴가를 간 손 간호사는 우연히 산호섬에서 조류에 휩쓸렸다가 구조된 한국 여성을 목격했다.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의식불명에 호흡도 불분명한 상황이라 구조대나 가족도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고 한다.
손 간호사는 구경꾼들을 밀치고 뛰어들어 흉부압박과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즉각적인 심폐소생술 덕분에 사고를 당한 여성은 곧 의식을 회복했다. 나중에 현지 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환자를 진찰한 외국 의사는 “환자가 고령이기 때문에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었으나 초기 응급조치가 완벽했기 때문에 회복 상태가 매우 좋다”고 말했다.
심폐소생술은 심근경색을 비롯한 각종 심정지 상황에서 환자의 생명을 구할 뿐 아니라 뇌손상도 최소화해 소생 후에도 정상적인 삶을 지키는 방법이다. 많은 심장전문의와 응급의학전문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과 정확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인체의 피에는 약 4분간 뇌를 지탱할 산소밖에 없기에 그 시간 안에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으면 혹시 살더라도 치명적인 뇌손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기 힘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심폐소생술에 대한 정보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의료기관 종사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심폐소생술 교육과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으면 한다. 30분 정도의 짧은 교육으로 타인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술은 배워볼 만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심정지 환자 발생 건수는 연간 인구 10만 명당 40명 정도. 매년 약 2만 명이 갑자기 쓰러진다. 이는 로또 당첨확률보다 3000배 이상 높을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한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심정지 발생 빈도에 비해 즉각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빈도는 매우 낮다. 전체 심정지 환자 중 주변에서 이를 목격하는 경우가 40%에 이르지만 일반인이 그 자리에서 심폐소생술을 시도한 비율은 1%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라고 한다.
심폐소생술은 자동제세동기와 함께 하면 그 효과가 높아진다. 과거 공항이나 대형병원 등에만 있던 자동제세동기는 이제 냉면집 벽면에도 걸려 있다. 한편으론 심폐소생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퍼져 나가는 것 같아 든든한 마음도 든다.
세브란스병원은 2006년부터 미국심장협회 교육 자료와 전문 인력을 통해 심폐소생술을 교육 훈련하는 전문센터를 마련했다. 이 센터 내 교육 대상자는 처음엔 병원 직원들에 국한됐으나 최근에는 비의료인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심폐소생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 결과다. 새해엔 심폐소생술 습득률이 올라가 일반인도 안타까운 죽음을 막는 일에 동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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